2. 농락하자.
도시락 테러를 어떻게든 넘긴 나는 피폐해진 정신을 달래기 위해, 오후 수업을 몽땅 수면으로 때웠다. 늘 하던 짓이라고 해선 안 된다.
"힛키, 왠지 지쳐있네"
"괜찮아?"
점심시간의 사태를 보아서 일 것이다, 유이가하마와 하야마가 걱정스러운듯 이쪽을 쳐다본다. 그, 그만해. 리얼충이 가볍게 간섭해오지마! 나는 이렇게 배려할 수 있어요, 어필에 먹히는건 이제 지긋지긋해! ………뭐, 그렇게까지 비뚤어지진 않았지만. 굳이 이렇게 말을 걸어주는것 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니까. 유키노시타랑 한동안 지내고서 왠지 모르게 알았지만, 나를 포함한 외톨이는 주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할가, 경계심이 아주 높다. 차 안에 남겨진 한 마리 강아지처럼 이래저래 컹컹 짖으면 주위에서도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내려다보는 시선이, 이쪽도 받아들일 자세가 있으면 의외로 사람은 다정해지는 것이다. 뭐, 거기서 들떠서 나를 좋아하냐 라고 오해해버리는건 또 다른 문제다. 겸손하게 가자.
"유키농한테 끌려갔는데, 무슨 일이야? 설교?"
"나는 동급생한테 설교받는 남자로 보이는거냐………"
"에? 그치만 힛키, 사이랑 테니스 하고나서 탈의실에 들어가서 유키농한테 심하게 혼났잖아?"
"그건 억울하다. 불가항력이다. 나는 나쁘지 않아. 잠금쇠가 있는데 안 잠궜던 그 녀석이 나빠"
"노크는 해, 히키타니………"
쓴웃음을 짓는 하야마에게 그도 그렇군 하고 끄덕인다.
"뭐, 이번에는 설교받은게 아냐. 그저 좀 지친것 뿐이다"
"아-, 유키농은 힛키한테 무지 독설을 하는걸"
"정말이지 말이다. 뭐냐고 저거, 저거 나한테 대하는 아이언 메이든이라고"
"아이어………뭐야 그거?"
"서양 고문 도구군. 히키타니는 꽤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걸"
"집어쳐, 재미있는 소리로 따지면 유키노시타가 훨씬 더 엄청나다고. 저 녀석, 나를 힐책할때만 평소의 몇 배 이상으로 머리가 돌아가나, 싶을 만큼 다채로운 어구를 쓴다니까"
재미있는 소리를 하면 우쭐댄다는듯 반짝거리는 미소를 지어오니까 시종 끝나질 않는다.
"그래서, 그 아이언 메이든에게 고통받았다는 거구나"
"아아, 그래 그………"
끄덕이려던 몸이 멈춘다.
"헤에, 나는 아이언 메이든이구나, 히키가야………"
무셔-!
하야마와 유이가하마의 뒤, 설녀처럼 저온을 가진 위협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유키노시타는 서 있었다.
뱀에게 노려진 개구리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된 나를 곁눈으로 하야마와 유이가하마는 얼버무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뒷걸음질 친다.
"유, 유키농! 나, 나는 나쁘지 않아!?"
"아, 이 자식, 나를 팔았겠다!?"
"아, 아이언 메이든이라고 말하고 웃은건 힛키랑 햐아토 뿐인걸!"
"나, 나는 나쁘지 않다고!? 그저 재미있는 소리 하네, 라고 칭찬한것 뿐이다!"
"칭찬했다는건 찬동했다는거 아냐! 하야마아, 네놈도 길동무라고………?"
"그, 그만해 히키타니! 희생은 적은 편이 좋잖아!?"
"그렇다고 외톨이인 나한테 다 떠넘기지 마! 너는 괜찮잖아, 상처입어도 친구들이 달래주니까! 나는 유일하게 달래줄만한 유키노시타가 화가 났으니까 아무도 달래주지 않는다고! 안 그래!? 혼난다면 하야마잖아!?"
"쫑알쫑알 시끄럽네"
"네………"
얼음같은 한 마디에 조용해져서 나는 의자 위에서 조용히 정좌 자세를 취했다. 평소 꾸지람을 듣는 자세다.
"………누가 아이언 메이든?"
"아니, 정말로 죽을 죄를 졌습니다"
"사죄는 필요없어. 그저 일의 상세 내용을 알고 싶은것 뿐이야. ………누가 아이언 메이든?"
"유, 유키노시타. 히키타니도 인간이야. 매도 당해서는 이렇게 푸념도 하고 싶"부외자는 조용히 해" ………네"
하야마, 침묵.
후에에, 우리 부장 권력 너무 쎄에……….
가엾게도 유이가하마는 부들부들 강아지처럼 떨고 있다. 어지간히도 무서웟는지 가볍게 내 소매를 잡고 있지만, 이거 그만해주면 안 될까요. 착각해버린다고요? 이따끔 다정한 리얼충들은 무의식중에 이쪽의 약한점을 찔러오니까 난처하다. 아니, 정말로 여자는 다들 가볍게 바디 터치하는거 금지! 야한건 싫습니다.
"그래서, 누가 아이언 메이든?"
세 번째 질문. 단념하고 나는 유키노시타를 가리켰다.
"………그래"
갑자기 유키노시타는 한숨을 내쉬고,
"………그렇게나 서로 아-앙 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다니, 히키가야는 무정하네"
그런 터무니 없는 폭탄을 떨어뜨렸다.
"………"
"………"
"………"
삼인삼색 경직하는 가운데, 유키노시타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나 얼굴을 빨갛게 하고 있었는데, 기쁘지 않았던거니? 아아, 그게 정신적 고통을 일으켰으니까 나를 아이언 메이든이라고 부른거야? 너 정말 부끄럼쟁이구나"
살짝 뺨을 붉힌 유키노시타에게 가장 먼저 유이가하바가 복귀했다.
"유, 유키농 아-앙했어!?"
"했어"
"받았어!?"
"받았어"
"꺄-! 굉장해!"
과연 연애뇌다. 순식간에 텐션이 상승해서 어째선지 유키노시타를 껴안는다.
"축하해, 유키농!"
"아아, 아니. 아직 사귀는건 아니니까"
"아직!? 아, 그치만 아직이라는건 이제 곧 이라는 소리지?"
"히키가야에게 달려있어"
"유키농 굉장해! 홀딱 반해!"
"그렇게 떠들어대도 곤란한데………"
여자 둘인데 떠들썩한 그녀들을 아직 멍청한 의식중에 쳐다보고 있으니 하야마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히키타니………"
뭐야, 그 울음같은 미소는.
뭐야, 나 노리고 있었냐? 에비나가 기뻐하겠구만……….
"………폭발해라"
"정색하고 그런 소리 마라, 무서워"
너한테 듣고 싶지 않아. 학교 제일의 인기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남자에게 곡해당하다니, 영문을 모르겠다. 너, 이거 이상으로 뭐 갖고 싶은거냐, 이 구두쇠 같으니! 조금 정도는 외톨이인 나한테도 나눠주세요.
"뭐, 됐어. 가자, 히키가야. 부활동이야"
지쳐버린 내 손을 잡고 유키노시타는 걸어갔다.
"행복해야해!"
"………행복해야해"
기운 넘치는 유이가하마와 어딘가 의기소침한것 처럼 보이는 하야마에게 배웅 받고, 교실을 나갔다.
"어이"
부실에 도착하자마자 유키노시타에게 말을 걸었다.
"뭐니"
"아까전엔 뭐야"
"아까전이라니"
"그러니까, 아까전에 교실에서 테러말야. 뭐야 너, 안 그래도 조금 미묘한 반 안의 내 위치를 더 나쁘게 하고 싶어? 괴롭히기야?"
봉사부 활동 일환으로 연관된 유이가하마나 하야마라는 카스트 상위 2명이 말을 거는 외톨이라고 하는 잘 모를 입장인 나는 반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지 버거워진다. 사용 설명서가 필요해지는 수준이다. 유이가하마한테는 '삐뚤어진것 뿐이지 근본은 솔직" 하다고 듣고 있어서 실제 취급은 굉장하게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유키노시타도 진심을 내면 나 정도는 간단하게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 녀석은 인심장악 같은거 엄청 못하니까. 하위층 사람들의 마음을 모른다고 할까. 이번 승부에는 그 극복도 포함되어 있는걸지도 모른다.
"승부의 일환이야"
태연하게 유키노시타는 말했다.
"저거에 무슨 의미가 있는데?"
"착각이야"
"착각인거냐"
알겠니? 라며 유키노시타는 이쪽 얼굴을 올곧게 쳐다보고,
"주위에, 나와 네가 자못 특별한 관계인것 처럼 보인다. 그렇게 하면 유이가하마처럼 네 주위는 나와 네가 특별한 관계인걸로 받아들일거야. 그런 나날이 며칠이나 계속되면 점차 너는 나와 특별한 관계인것 같은 착각에 빠져, 정신을 차리면 진심으로 나와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게 돼. 거기까지 가면 네 마음은 나 일색. 나의 승리야"
"특별한 관계라니, 말이 지나치잖냐. 게슈타르트 붕괴하겠다. 뭐야? 특별한 인간이야? 벨다스 오리지널이야?"
"뭐, 요컨대 그런거야. 타의는 없어"
"어디까지나 승부를 위한 한 수인가"
"그래"
흐응.
순전히 목적 달성을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소유권을 주장하는건가 생각했지만 또 착각인가. 뭐, 유키노시타는 어디까지나 승부에만 집착하니까. 딱히 나를 좋아하는것도 아니니까. 그런 의미로는 착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마음이 편하다.
그래, 농락하기 위해서니까 좋아싫어는 하는 쪽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고서 슬퍼졌구만.
"뭐, 그런거라면 어쩔 수 없군. 네가 그렇게나 진심이라는 소리고. 주위에서 얘깃거리가 되거나 놀림받을 각오는 제대로 된거겠지"
"그래, 물론. 오히려 오라고 할 정도야"
"과연. 네가 좋다면야 나는 딱히 상관없어"
"………새삼스럽지만, 괜찮니? 교실 안에서 입장이라거나"
"뭐야, 걱정해주는거야?"
"그러는 편이 포인트 높잖니?"
"하치만 입장으로는 말이다. ………기껏해봐야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정도겠지. 자주 있는 일이니까 신경 안 써"
"자주 있는 일이구나………"
"아마 외톨이 특유의 자의식 과잉 탓이겠지만"
혼자 있으면 무척이나 주변 소리가 잘 들린다. 경계심이 높아져 있기 때문일까 웃음소리가 나면 자신이 비웃어진다고 생각을 한다. 남은 나같은 거에게 주목하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는데.
"네가 승인해준다면 한 동안은 그러는걸로 하자"
"알았어"
끄덕이고서 이 이야기는 끝.
"그래서, 부실 왔는데, 지금부터 부활동이지?"
"그래. 승부가 있다고 해도 부활동을 소홀이 할 생각은 없어"
여전히 성실하다. 그 의욕을 조금이라도 나에게 다정하게 하는 방향으로 써주면 안되나아. 나는 조금 다정하게 대하는것 만으로도 들떠버린다고. 외톨이는 그런 생물이다. 착각해버리는 생물이다. 훈련받았으므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끼어들지 않기 때문에 결혼사기 같은데는 걸리지 않는다. 그럴 것이다. 유이가하마에게 당하면 아마 여유롭게 도장찍겠지.
"부활동이라고 해도, 의뢰가 안 오면 한가하군"
"평소대로 독서라도 하자"
"그것도 그렇군"
독서는 좋다. 거칠어진 마음을 치유해준다. 리린이 만들어낸 최고의 문화다………. 뭐, 오늘 갖고온건 색기 많은 라노벨이지만. 치유 방향이 카바레 클럽과 같은건 이 기회에 넘어가자.
"후우"
평소처럼 유키노시타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거냈다. 자아 그럼 막 치유 세게로 빠져들려고 할때, 툭, 하며 바닥에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꽤나 가까이, 거의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눈을 돌리니,
"………뭐하는거야 너"
"옆에 실례할게"
내 옆에 의자를 세우고 유키노시타는 태연한 얼굴로 툭 앉았다.
가까워, 유키노시타 씨. 가슴 닿고 있어요, 유키노시타 씨. 진짜 카바레 클럽 같아요, 유키노시타 씨. 이런 미인이 있으면 흡사 번식해버리겠지.
"………아아, 이것도 승부의 일환인가"
"그래, 물론. 뭐니? 좋아서 이러는거라고 생각했어?"
"그런 자만을 하는 남자가 아냐. 호의적인 행동에는 반드시 뒤가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도록 훈련되어 있으니까"
"단순한 인간불신이잖니………"
유키노시타는 기막히다는 눈으로 이쪽을 본 후,
"하지만, 자만이라고 생각한다면, 네 옆에 앉는건 바람직하다는 소리지?"
"………또 무덤팠나"
"정말로 빈틈이 많구나. 의식적인 빈틈인거지?"
"아아, 그 말대로다. 빈틈투성이인 나한테 방심해버리는 네 모습이 눈에 훤하다"
"어머, 그러니. 그럼 경계해둬야겠구나"
유키노시타는 쿡, 웃고 툭, 머리를 이쪽 어깨에 기대었다.
"어, 어이………"
허둥대고 있으니 유키노시타는 도발적인 시선으로,
"뭐니? 이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거야? 너 입만 살았구나"
"크………"
이런 말을 들어버려서야 어쩔 수도 없다.
"핫, 이런건 전차에서 옆에 앉은 여학생에게 몇 번이나 당했으니까 말이다. 익숙해져 있어. 오히려 마이스터다"
그거 거북했지. 제지도 못하고, 하지만 받아들이는것도 정신적으로 괴롭다. 진짜 여자는 도깨비여.
"그래. 확실히, 머리 두기엔 편안해서 좋구나"
"머리 두기 편하다는건 뭐야. 처음 듣는다고. 그보다 뭐야 너. 좋고 나쁘고 판단할 수 있을만큼 남의 어깨에 머리 기대는거야? 어깨 소믈리에야?"
"그럴리 없잖니. 단순히 마음이 편해서 그렇게 말한것 뿐이야"
"꽤 기쁜 소리를 해주잖아"
코마치에게 또 빌려주자, 어깨.
하지만 이것도 당하기만 해선 분하다.
좋아, 이 어깨에 머리를 문지르며 "응-………" 라고 말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는 이 여자에게 반격을 하나 해보자.
"아-………그거다. 그렇게나 편안하면 언제든지 어깨 빌려줄까?"
어때, 이 살인문구. 다정함이 흘러넘쳐서 세계가 평화로워질 수준이다. 나, 되게 성인이잖아.
"에………?"
거 봐, 유키노시타 씨도 놀라고 있다고? 뀽 온거 아냐? 뭐, 아니겠지.
"………그래도 돼?"
"에"
왜 그렇게 감미로운 목소리야?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어, 어어, 좋아. 얼마든지 와라"
"그래………"
유키노시타는 한번 끄덕이고,
"………기뻐"
부끄러운듯 볼을 붉게 물들이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야 그 고등 테크닉.
지나치게 연기파잖아, 유키노시타………. 승부라는걸 몰랐으면 단번에 착각해서 고백했을 참이라고. 또 하나 져버릴 필요 없는 목숨을 구해버렸구만……….
"………잠시 이대로 있어도 될까"
"………오오, 상관없어. 기분 너무 좋아서 반했다고 하지 마라?"
"후후, 그렇구나"
생글생글 기분 좋게 유키노시타는 내게 머리를 기대온다. 경계심이 너무 없는 그 행동에 한 랭크 위의 외톨이는 이런건가 전율을 느끼면서 독서로 돌아갔다.
집중할 수 없어서 좀처럼 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내 오른손을 유키노시타는 어느샌가 움켜쥐고, 감촉을 확인하듯 곰실곰실거리고 있었다.
차갑고 부드러운 손가락 감촉도 또한, 그녀가 말하는 승리로 가는 한 수 였던걸까.
손만 부드러웠다고는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