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청춘/내청춘SS『어쨌든 히키가야 하치만은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남친(가짜)에 적합한가』

내청춘SS『어쨌든 히키가야 하치만은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남친(가짜)에 적합한가』- 03

모래마녀 2014. 10. 10. 15:26

토요일 점심이 지나, 약속 장소에 지정된 카페에 도착하니 이미 하루노 씨가 테라스 자리에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굳이 찾을것 까지도 없이 한 눈에 알아버리는게 과연. 오늘은 지극히 청초한 복장인 모양이지만, 그 눈부신 아름다움은 멀리서도 인목을 끈다.
 
실제로 내가 도착할때까지 그 짧은 사이에도 몇명의 남자들이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지만, 모두 한결같이 송사리 캐릭터처럼 훌륭하게까지 가볍게 타일러졌다.
 
이게 만약, 동생농 쪽이었으면 아마 쓸데없이 사망자가 나온다. 그 녀석을 헌팅하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그 날카로운 혀에 걸려서 꿈이 박살난 사나이들의 겹겹이 시체 산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이 평화로운 일본에서 게다가 여자애와 약속 장소로 향하는 그 흔해빠진 일상 광경 속에서 왜 뼈와 피의 강산을 넘어가는 세기말적인 바이올런스한 시츄에이션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거야. 수라국의 사람이야?
 
 
 
하루노"아, 히키가야, 이쪽이야 이쪽"나를 눈치챈 하루노 씨가 손을 흔든다.
 
눈부신 미소에 무심코 가슴이 두근거린다. 혹시 이건………심근경색? AED야?
 
주위 남자들로부터 내게 향하는 선망과 질투의 시선이 엄청 따갑다. 지금 내게 부어지는 시선을 가시화한다면 아마 성게가 되는게 아닐까 생각할 만큼.
질량이 주어지는 날에는 바늘방석이 되서 무사시보 벤케이처럼 서서 죽을 참이다.
 
나의 갈고 닦인 스텔스 기능을 무효화하다니, 혹시 오른손에 환상○라던가 깃들어 있어? 어디의 금서의 무슨조 씨냐.
 
 
 
하치만"세요"나는 주위를 돌아보면서 쓴웃음을 숨길 수 없었지만, 하루노 씨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는다. 아마 이미 익숙해진거겠지.
 
하루노"일찍 왔구나"
 
하치만"당신 만큼은 아닙니다"
 
힐끔 시계를 보니 아직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이르다.
 
하치만"혹시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하루노"예정보다 빨리 도착했지만, 책을 읽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도 않았어"그렇게 답하면서 조금이지만 의외스런 얼굴을 한다.
 
하치만"왜 그러십니까?"
 
하루노"히키가야는 의외로 여자애를 배려하는 타입이었구나. 아, 미안해. 그런 식으로는 안 보였으니까"
 
하치만"무슨 소리를 하는겁니까. 저는 이렇게 보여도 엄청 배려한다고요? 평소엔 분위기를 읽지 않는 척을 하는것 뿐입니다"
 
배려하기 때문에 그 자리의 분위기가 흐려지지 않도록 항상 발언을 자제하고 있고, 상대를 곤란하게 하지 않도록 놀러가자고 해도 거절하는 것이다. 놀러가자고 권유 받은 적도 없지만.
 
 
 
하루노"읽지 않는 척…이라. 흐-응"뭔가 납득한것 처럼 눈을 가늘게 뜬다.
 
하치만"뭐, 뭡니까?"
 
하루노"문화제 때도 그랬던가…랄까"모든걸 꿰뚫어보는 듯한 눈을 내게 향한다.
 
하치만"아ー…읽니마니 한다고 보니, 무슨 책을 읽고 있었습니까?"
 
하루노"후후, 뭐라고 생각해?"
 
거북해져서 일부러 화제를 바꿔봤지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응해주는 점을 보건데 역시 연상의 여유라는걸 느낀다.
동생농이라면 이쪽이 말할때까지 캐묻는다. 그보다 따진다. 심리적인 프레셔가 장난이 아니다. 아마, 토하기 전에 운다. 요컨대 울면서 소리지르게 된다. 엄청 무섭다.
 
 
 
하치만"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같은거…인가요?"어쩌면 마키아밸리의 '군주론'같은것도 어울릴것 같네요.
 
이사람의 경우, 정말로 실천할것 같아서 농담이 아니지만. 저거, 하우 츠 한권 같은게 아니니까.
 
하루노"아하하. 땡. 이거야"그렇게 말하면서 고급스런 가죽 커버를 벗기고 제목을 보여준다.
 
릴케 시집 ―― 솔직히 의외였다. 뭐, 독화대어록이라는게, 이 사람답다고 하면 답겠지만.
 
하치만"초기의 연애시집입니까. 의외로 소녀틱하네요"
 
하루노"어머, 실례네. 나는 소녀란다?"
 
하치만"에,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고 말이죠…"나는 말이 막혀서 머리를 긁는다.
 
하루노"말 안했니? 이래보여도 나 아직 처…"
 
하치만"아무도 안 물었습니다!!!!"///
 
뭘, 냉큼 커밍아웃하려는거야. 방심도 빈틈도 없잖아.
뭐, 언뜻 놀고있는것으로 보이면서도 실제로 양가의 자녀니까 몸가짐은 단정한게 당연한가. 의외라고 하면 의외고, 판단에 곤란하다…일단 보류.
 
 
 
당사자는 허둥대는 내 얼굴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고 있다. 이런, 완전히 연하 풋풋한 소년을 놀리고 있어. 역시 소악마다, 이 사람.
 
하치만"커흠. 아-, 실은 저도…좋아한다고요"
 
하루노"엣?"갑자기 벙하니 입을 연다.
 
하치만"핫?나, 지금 뭐 이상한 소리 했나?
 
하루노"에, 그게 그건…무슨 의미…이려나?"///
 
어째선지 볼을 붉게 붉히며, 드물게도 파닥파닥 혼란해하고 있다. 뭔진 모르겠지만 처음 봤다, 이 사람의 이런 얼굴.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데.
 
하치만"'세상의 연인들을 보라, 겨우 고백했다고 생각하니, 이미 사기였다'였나요? 시는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릴케의 격언 중 하나입니다"
 
하루노"아,아아. 그러니까… '말테의 수기' 중 한구구나. 과연 비뚤어진 만큼 그런걸 기억하는구나"
 
하치만"제가 말하자면 연애란 그야말로 거짓과 사기 덩어리 같은거니까요"
 
하루노"아하. 그건 동감일지도"
 
평소처럼 계산적인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이상한 착각을 하지 않는 만큼, 내게 있어서 안심할 수 있는 부류의 미소였다.
 
 
 
 
"꽤나 즐겁게 대화하는 와중에, 실례하는것 같은데?"
 
얼어붙는듯한 차디찬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어느샌가 내 뒤에 아연한 표정을 지은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서 있었다.
 
뭐야 너, 평소부터 나한테 차갑다고 생각했더니, 냉장고였냐? 프리더 같은거 탑재했어? 화내면 최종형태로 변신하는거냐?
 
하루노"어머, 유키노. 꽤 늦었구나? 아, 유이가하마랑 같이였구나. 얏하로-"
 
유이"아, 야, 얏하로-, 에요"그러니까 그거 경어냐?
 
둘의 사복 차림을 보는건 오랜만이지만, 어째선지 오늘은 둘다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왜 도착하자마자 그렇게 기분 나쁘단 표정을 짓는거야? 기분 나쁘면 차라리 집에 가는게 어때? 뭣하면 내가 먼저 집에 가도 돼? …아니, 괜찮지 않냐.
 
 
 
유이"힛키도 참, 너무 좋아하고있구"뿡뿡
 
하치만"하아? 딱히 좋아하지 않았어"나른해하는건 평소 일이고, 눈도 눅눅하게 썩어있다. 요컨대 평소대로다. 내 입장으로는 이상 없음. 올 그린.
 
유키노"유이가하마. 이 남자의 얼굴이 한심한건 딱히 지금 시작된 일은 아니야. 그걸 탓하는건 잔혹한거야. 본인에게 죄는…있겠지만"
 
하치만"그렇구만. 네 입이 험한것도 지금 시작된 일이 아니지"아마 미래영겁 그대로라고 생각하니까.
 
이제 일본 경찰은 이 녀석을 '언론의 하나의 흉악 준비 집합죄'라는 명목으로 둘러싸야할 것이다. 그러는김에 치안유지법 같은것도 부활해버려. 이대로 방치하면 조만간 절대로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 주로 내가.
 
하루노"자 그럼, 다들 모인 모양이고, 슬슬 갈까"하루노 씨가 기지개를 피면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하치만"그렇군요…그럼 나, 일단 집에 가겠습니다"타악
 
유이"그러니까, 일단 이라고 하면서 그대로 집에 가려고 하지마!"
 
칫, 얼렁뚱땅 이대로 집에 가려고 했는데.
 
 
 
하루노"잠깐만 기다려. 지금 계산 마치고 올테니까"하루노 씨는 그렇게 말하고 핸드백을 들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테이블에 남은 어렴풋한 입술자국이 남은 티컵을 왠지 모르게 본다. …이거, 옥션에 팔면 비싸게 팔리지 않을까?
 
유키노"우리들이 오기까지, 언니와 무슨 대화를 했던거니?"유키노시타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묻는다.
 
하치만"아? 지극히 평범한 잡담이었는데?"
 
유키노"네가 남들과 '극히 지극한 잡담'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 못하겠는데?"
 
하치만"그런건 아냐. '응'이나 '아아'나 '흐-응, 그렇구나' 라고 말하면 대개 대화는 성립한다. 내용은 부속이다"
 
유이"내용이 부속이구나?!"
 
하치만"당연하잖아? 일상대화도 대충 지장이 없는 소리만 할 뿐이고, 내용은 거의 없는거나 마찬가지니까"
 
오늘은 좋은 날씨네요, 던가, 그런거 하늘을 보면 일목요연하잖아. 왜 일부러 동의를 구하는건데. 나는 하치만이지 예스맨이 아니라고. 세상의 중심에서 예스 위 하치만! 라고 소리지르면 되냐?
 
유키노"너는 평소부터 남에게 그 '지장없는 소리'조차 하지 않잖니? 가끔은 응이나 승이나 말해보는게 어떻니?"
 
하치만"응? 승?"
 
유키노"…대책없네"유키노시타가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쉰다. 이 녀석 이런 점은 되게 엄격하니까 어쩌면 지금 그걸로 정말로 나를 다시 본걸지도 모른다.
 
 
 
하루노"기다렸지~. 자, 히키가야. 가자"
 
계산을 마치고 돌아온 하루노 씨가 지극히 자연스런 흐름으로 내 팔을 잡는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도망치는것에 관해선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내가 무심코 도망칠 타이밍을 놓칠 정도다.
 
유이"므읏…"유이가하마가 불만스런 소리를 지르고,
 
유키노"언니, 그 남자한테서 팔을 놔!"유키노시타의 질책이 날아든다.
 
하루노"어머, 괜찮잖니. 오늘은 데이트구. 거기다 아직 반대측 팔이라면 비어있는데?"
 
주눅들지 않고 답하는 하루노 씨의 말에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얼굴을 마주본다.
 
아니, 너희들 이거 벌게임 같은거 아니잖아. 딱히 무리 안해도 된다고?
수업에서 남녀 짝을 정할때처럼, 남은 사람끼리 서로 양보하는 척 하면서 나를 밀쳐내는거 그만해. 그거 정말로 견딜 수 없게 되니까.
 
 
 
하치만"하하하(국어책 읽기), 팔짱끼는건 참아주세요"
 
나는 트라우마에 짓눌릴것 같으면서 가능한 실례되지 않도록 부드럽게 하루노 씨에게 감긴 팔을 떼어냈다.
마침 팔꿈치 부분이 가슴에 닿아서 두근거리고 만다. 유이가하마라면 모를까 유키노시타라면 이렇게는 되지 않는다. 아마. 무서워서 말 못하지만.
하루노 씨는 힐끔 내 얼굴을 보고, 가볍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지만 특별히 기분이 상했다는건 아닌 모양이다.
 
하루노"히키가야의 입장으론 어깨 나란히 걷는 편이 좋으려나?"그렇게 말하면서 살며시 내게 다가선다. 그러니까 괜히 가깝다니까요.
 
하치만"…아뇨, 저의 기호같은거 문제가 아니니까요"당연히 알면서 말하는거죠, 그거?
 
적당한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사고 일어나잖아, 내 하반신이 폭주해서!
 
내가 뛰쳐나가듯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하루노 씨는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었지만, 특별히 무리하게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대로 우리들의 길안내를 하기 위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간다.
그 매력적인 뒷모습을 눈으로 쫓는 와중에, 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말았다.
 
…역시, 여성의 가치는 가슴보다 엉덩이 일지도 모른다, 응.
 
안심해라, 유키노시타. 너한테도 아직 희망은 있을지도 모른다?
 
 
 
유이"힛키, 왜 그래?"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어와서 나의 숭고한 철학 타임은 중단되어, 억지로 현실로 되돌아온다.
 
유키노"히키가야, 뭘 엉거주춤하는거니? 얼른 오지 않으면 두고간다!?"
 
하치만"아니, 그러니까 나 두고 가면 너희들끼리 대체 어디로 뭐하러 갈 생각인데?"이미 본래의 목적같은거 잊고 있지 않아?
 
선행하는 셋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나는 이거 참, 거리며 작게 한숨을 쉰다. 이제 진짜로 얼른 집에 가고 싶은데?
마치 향수병에 걸린 아이같은데. 그보다, 이 권태감을 비롯한 두통이나 현기증상은 오히려 향수병에 가까운걸지도 모른다. …아니, 집하고 전혀 관계없잖아, 이거.
 
 
 
오늘 예정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듣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하루노 씨 쪽에서 여러모로 수배해준 모양이다.
나는 자신의 의사에 맡기지 않고 듣는대로 따라가는 수 밖에 없다. 번개가 내려도 큰 나무 그늘로 가고, 길어지면 뱀이라도 기쁘게 감아버리는게 나라는 인간의 정책이니까.
 
하루노"우선 그 머리부터구나"
 
유키노"언니, 이 남자의 머리 속은 이제와서 손을 대봐야 어떻게 되지도 않는데? 포기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하루노"그건 알고 있지만, 내가 말하는건 내용물이 아니라 머리형태 쪽이야"
 
하치만"…내 머리 속은 세간 일반적으로 대체 어떤 평가를 받는거야"
 
유키노"어머, 듣고 싶니? 너, 의외로 도전적이구나…"
 
하치만"…아니, 역시 사양해두마…"
 
네 입에서 들으면 아마 한동안 재기 못할것 같고.
 
하치만"…그보다, 머리라면 저번달에 깎았다고?"
 
유키노"어머, 뇌 수술이라도 받았니? 그 때 의시한테 이미 가망없다고 들었던거니?"
 
하치만"이발소에 갔다는 의미다. 너 그거, 알면서 그러는거지?"
 
유키노"그럼 차라리 로보트미(뇌두엽 절제) 수술같은걸 받아보는게 어떠니? 그러면 네 그 비둘어진 성격도 조금은 솔직해질지도 모르잖니? 한번 시험해볼 가치는 있지 않겠니?"
 
하치만"한번 시험하면 두번 째는 없지만 말이다"그보다 인도적으로 문제 많잖아. 그 발언을 하는 너 자신이.
 
유키노"그런데 이발소에 갔다면 그 삐쭉 튀어나온 털은 어떻게 안 되니?"
 
하치만"아니, 일단 이 바보털이 내 트레이드 마크니까. 이거 빼버리면 누구인지 모르게 되고"
 
유이"괘, 괜찮아! 힛키한테는 아직 그 썩은 눈이 남아 있으니까!"
 
하치만"…바보털과 썩은눈 만이 나의 아이덴티티 전부냐"
 
어디 부근에 괜찮은 요소가 있는건지 누가 나한테 자세하게 설명해줘.
 
 
 
하루노 씨를 따라, 우리들은 화려한 느낌이 드는 미용실을 갔다.
멘즈 논케라던가 팝 아이에 실릴듯한 그거다. 읽은 적은 없지만 아마 그런 느낌.
 
화려한 가게에 화려한 카리스마 미용사가 있고, 그야말로 난해하여 화려한 전문용어를 구사하여 화려한 대화를 하고 있다…그저 하나 다른건, 오늘 손님은 외톨이였다는겁니다…라는 나레이션이 들어갈듯한 가게다.
 
요컨대 평소 나라면 절대로 접근하지 않을 법한 곳이다. 오히려 귀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불길한 곳은 비해야하잖아. 누가 음양사 불러줘.
 
하치만"아-, 나 화려한 가게 들어가면 죽어버리는 병에 걸려서…"
 
유키노"…그건 또 새로운 패턴이구나. 네 경우, 조만간 갈 곳이 없어지는게 아니니?"
 
하치만"됐다고, 장래엔 줄곧 집에 틀어박힐 예정이니까"
 
유이"근성부터 힛키구나…"
 
유키노"그냥 차라리 히키코모리가야 라고 자처하는게 어떠니?"
 
하치만"그거라면 이미 중학교 시절에 불렀었다…멋대로 주위가"
 
유이"불쌍하기 짝이없는 흑역사구나…"
 
하치만"애시당초 머리자르는데 돈을 낸다는건 뭐야? 그런건 시계 줄도 못 사잖아?"
 
유키노"'현자의 선물'…이구나. 너는 제대로 숫자도 못 세는 주제에, 어째서 그런 지식만 풍부한거니?"유키노시타가 기막힌 얼굴로 지적한다.
 
유이"후와? '현자의 선물'이라니…?"
 
유키노"그게, 빈곤한 부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서로 머리카락과 시계를 팔아서, 각자 시계줄과 머리빗을 사는 이야기야?"
 
유이"아, 그거라면 알고 있어! 분명…"
 
하치만"인간의 추악한 정신이나 제멋대로된 호의 강요를 경계한, 고맙고도 구제못할 이야기다. 마지막은 모두 죽어"
 
유이"아니 안 죽어!"
 
유키노"너한테 걸리면 도덕적인 이야기도 모두 비극이 되버리는구나…"
 
하치만"나의 지금까지 인생은 비극의 연속같은 거였으니까"
 
유키노"얼굴만 희극이면서?"
 
하치만"그러니까 그런 말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귀여운 얼굴로 하지 말라고…"
 
 
 
 
하루노"전화로 예약한 히키가야인데요"하루노 씨가 카운터에서 가게 스태프에게 말을 건다.
 
스태프"아, 알고 있습니다. 남성분 한 분이죠. 이쪽으로 오세요"
 
특별히 기다릴것도 없이 안내받은 의자에 앉고 잽싸게 나를 담당하는 미용사가 말을 걸어온다. 젊고 예쁜 축의 누나다.
 
미용사"어서오세요. 어떤 느낌으로 할까요"생긋
 
괜찮은 영업용 미소가 썩은 내 눈에는 엄청 눈부시다. 소비전력량이 비싸보이는데. JIS 조도기준 같은데 비추어봐도 좀 지나치게 밝잖아. 원기옥이냐.
내게 보여주는 미소로 하면, 냉소와 조소와 실소와 고소 정도 밖에 없는 누군가 씨는 조금 배워야 한다. 굳이 누구라고는 말 안하겠지만. 유키노시타라던가.
 
하치만"하, 하아, 적당하게 부탁합니다"항상 그늘진 곳에 있는 나로서는 거울 너머라고는 해도 그 밝은 미소를 직시하지 못해 그만 눈이 헤엄치고 만다.
 
진정해라, 나. 딱히 순경한테 직무질문 받고 있는것도 아니니까.
 
 
 
 
나는 평소부터 머리형태 같은데 신경쓰지 않는 편이지만, 그건 단순히 나 자신이 무정하다는것 만이 아닌, 내버려둬도 머리카락이 그런대로 어떻게든 되버리니까 내버려두는 것이다.
뭐, 귀찮다는건 틀림없지만, 딱히 투구 앞에 '사랑'문자가 새겨져 있는것도 아니다. 뭐야 그거 어디의 위풍당당이야.
 
그러니까 아침에도 특별히 세팅 같은거 하지 않고, 당연히 정발료도 쓰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1시간 가까운 시간을 들이는 녀석도 있는것 같지만, 그런 시간이 있다면 틀림없이 1분 1초라도 길게 잘 것이다, 보통. 성장기인 청소년에겐 충분한 수면시간이 필요하고, 나같은건 제대로 8시간 이상 수면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할때는 수업중까지 자고 있으니 초 건강우량아. 불건전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풀어졌다고 해도 규칙도 있으니, 이번에도 너무 기발한 머리형태는 하지 않는 편이 무난할 것이다. 거기다 너무 눈에 띄면 외적에게 습격당할 걱정이 있다…있는거냐, 외적.
 
어쨌든 적당하게 머리 정리하고 간단하게 정리받을 정도로 하기로 마음 먹고, 나는 그 취향을 대충 미용사에게 전한다. 아니, 대충 잘라버려도 곤란하지만, 목이라던가.
 
 
 
내가 익숙치 않은 가게의 분위기에 긴장해서, 한결같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미용사는 신경쓰지 않고, 프로다운 착실하게 작업을 진행하면서 싹싹하게 말을 건다.
 
일이라고는 해도, 이런 내게 말을 걸어주다니, 이 사람. 상당히 커뮤력이 높다. 혹시 스카우터로 계측하면 한계치 돌파하는거 아냐?
 
그에 반해 나는…힐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훗…커뮤력…고작 5인가…쓰레기자식"중얼
 
무심코 셀프 디스걸어버릴 정도로 슬프다.
 
 
 
미용사"응? 왜 그래?"
 
하치만"아, 아뇨 딱히…"
 
미용사는 내가 진정할 수 있도록 속어를 써주는 모양이다. 이 부근의 임기응변에 대응할 수 있는 스킬도 커뮤력 높다는 거겠지.
마치갑자기 10년만에 친구라도 만난듯한 착각해버릴 듯한 친근감. 아니, 나, 친구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미용사"학생?"
 
하치만"하아, 네"
 
미용사"몇 살?"
 
하치만"열…일곱…입니다"
 
미용사"어디 학교?"
 
하치만"치, 치바 소부 고등학교…입니다"
 
미용사"여친 있어?"
 
이런, 역시 직무 질문이지, 이거? 혹시 사건 당일 알리바이같은거 묻는거야? 이제 차라리 토해내고 편해질까?
카츠동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보다 보통 별로 해본 적이 없으니까, 이런 오픈 대화는 엄청 거북한데.
새삼 일본어를 못하는 척도 못하고, 여기는 역시 오스독스로 자는 척이라던가? 아니, 차라리 죽은 척을 하는편이…어, 딱히 곰한테 덮쳐진것도 아니니까.
 
기세좋게 요동치는 내 눈이 미용사의 네임 플레이트를 포착하자 거기에는 '히노구마'라고 쓰여있었다.
 
…응, 역시 죽은 척 할까?
 
 
 
 
하치만"…아뇨, 지금은 없습니다"
 
나는 죽은 척하기를 포기하고 대화를 계속하니, 일단 '지금은'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강조해둔다.
 
실은 과거나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확률적으로 통계적으로도 실로 수상쩍지만, 초대면인 사람한테 좀 허세부려서 답하는 정도라면 용서되겠지?
거짓말이 아냐. 어디까지나 희망적 관측이니까. 설령 상대가"그렇다는건 옛날에는 있었어?"라고 착각을 해도, 그건 그거대로 어쩔 수 없고. 여기가 일본어의 어려운 점이지? 응, 현대국어 학년 3위인 내가 말하는거니까 틀림없다. 다행이다. 영어로 대화하지 않아도. 해라고 해도 무리지만.
 
히노구마"…그렇다는건 전에는 있었다는 소리니?"
 
하치만"…………………………아뇨"
 
왜 어딘가 아파보이는 소년의 약간의 허세마저 몰아붙이는걸까, 이 사람.
 
 
 
 
미용사"그래? 저렇게나 귀여운애 세 명이나 데리고, 좀처럼 구석에 둘수 없다고 생각하는데?"힐끔 대기실 쪽을 본다. 셋 모두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 딱히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데.
 
하루노 씨는 헤어 카탈로그 계열 패션 잡지를 보고 있고, 유이가하마는 두리번거리면서 때때로 유키노시타에게 말을 걸고, 유키노시타는 거기에 적당하게 대답을 하는 모양이다.
때때로 유이가하마가 식겁하는 장면을 보건데,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대화 내용은 상상할 수 있다.
 
십중팔구, 내 험담이다. 틀림없다.
 
 
 
 
"유키농, 유키농. 봐, 이 머리형태. 왠지 힛키한테 어울린다고 생각 안해?"
 
"그럴까?"
 
"아, 반응 얕아-. 그럼 이건 어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후우-, 유이가하마. 뭘 근거로 그 머리형태가 히키가야한테 어울린다고 하는거니?"
 
"에? 왜, 왠지 모르게…려나? 분위기라거나…? 힛키도 조금 더 멋을 부리면 멋지게 보이는게 아닐까나"
 
"알겠니, 유이가하마. 저 남자는 머리 형태를 바꾼 정도로 갱생할만한 제대로된 인간이 아니란다? 애시당초 저 썩은 눈에서 배어나오는 부의 오러가…"
 
"아, 그, 그치만 힛키의 머리카락은 의외로 부드러워서 고양이 털같은데?"
 
"고, 고양이? 히키가야, 고양이야?"
 
"에? 아, 아ー…, 딱히 힛키가 고양이인건 아니지만, 확실히 고양이 같은 감촉…일까…?"
 
"나, 나도 다, 다음에 한번 만져볼까…"///
 
"…유키농, 고양이라면 뭐든지 좋구나…"
 
 
 
 
확실하게 봐주는건 좋을지도 모르겠지만…아니, 봐주는것만 상당히 수준 높은걸 인정하는건 인색한건 아니지만, 속은 그거거든.
너무 그거한 정도로 그거하니까.이제 그거가 그거해서 뭘 해버리는 수준. 구체적으로 말로 해버리면, 내 생명이 그거해서 뭘 할것 같으니까 그야말로 아무 말도 못하지만.
 
하치만"아ー…에 그게…구, 구석을 좋아하거든요"예를 들면 교실 구석이나. 덧붙여 도시락 구석을 찌르는것도 엄청 특기고.
 
내가 횡설수설하게 적당하게 대답을 하니.
 
히노구마"뭐야 그거-? 너는 재미있는 애구나"뭔가 웃기기라도 하는지 깔깔 웃는다.
 
문득 거울너머 뒤를 돌아보니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기분나쁘다는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어쩌라고? 구속받고 있으니까 도망칠 수 없잖아?
게다가 상대는 가위나 면도칼이나 흉흉한 날붙이를 들고 있고, 서투르게 움직이다 만일에 하나 찔리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히노구마"얘, 그래서 누가 진심이니?"소근소근
 
왠지 이 사람, 터무니 없는 착각을 하는 모양이다.
 
하치만"아니, 저, 경마 같은거 하지 않으니까 누구한테 걸지 않거든요"
 
히노구마"얼버무리고는. 그렇구나, 내 의견으론…"
 
하치만"하?"아니, 그러니까 멋대로 의견 세우지 마요.
 
히노구마"저 흑발 아이일까"아무래도 유키노시타인 모양이다. 뭘 착각하는거야, 이 사람. 유감이지만 정답은 4번인 토츠카입니다.
 
하치만"…어째서 그렇게 생각합니까?"일단 만일을 위해 들어둔다. 이후 엉뚱한 오해를 부르지 않도록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다. 뭣하면 자리 오른쪽에 이름까지 새길테다.
 
히노구마"후후. 비밀. 그치만 알고 있지? 그거 '맞습니다'라고 하는거나 마찬가지란다?"
 
하치만"…참아주세요"
 
진심이라니 터무니 없지만, 유키노시타니까 큰 구멍이라면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나를 빠뜨리기 위해 함정을 판다거나. 진짜로 그럴법 하니까 완전 무섭다. 게다가 구멍 바닥에 죽창같은거 설치해둘것 같고. 아니, 그 전에 오히려 내가 스스로 구멍을 팔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무덤파냐.
 
 
 
 
세팅이 끝나고 대충 1시간 정도 걸려 겨우 해방되었다.
 
히노구마"수고했어. 히키가야…였나? 괜찮으면 또 와"
 
하치만"아, 아ー…, 네. 감사합니다"
 
갈때 히노구마씨가 깜짝놀랄 영업 미소를 지어주었다. 사교인사로서도 미인에게 그렇게 들으면 역시 기쁘다.
 
분명 이렇게 그만 휘청휘청 술집 호스티스한테 돈을 붓고 몸을 망가뜨리는 남자는 많이 있을 것이다…우리집 망할 아버지라던가.
나도 그 소질을 유전자 레벨로 이어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역시 조금은 불안해진다. 무의식 중에 인중이 늘어나는 점이 특히.
 
하치만"후-, 구치소에서 해방됐을때의 기분을 잘 알겠다. 사회 공기는 역시 맛있구만"나는 얼버무리듯이 혼잣말을 한다.
 
유키노"어머, 평소부터 분위기를 읽지도 않는 네가 말하면, 어째선지 굉장히 위화감을 느끼는데…피의자야? 어머, 깨물었어"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깨문척하고 내 이름을 잘못 부르는거냐. 누가 피의자야? 그보다 그거, 절대로 고의로 한거지?
 
 
 
 
하치만"알아있다는걸 실감하는데"
 
유키노"죽은 생선같은 눈으로 그런 시원스레한 소리 하지 말아주겠니. 굉장히 불쾌해"
 
어째선지 유키노시타의 기분이 엄청 나쁘다. 그러는 김에 나를 대하는 태도는 좀 더 나쁘다. 게다가 그게 기본이라는 사실이 가장 최악인 느낌이 든다.
 
일단 아마 이걸로 평상분의 일상대화 스톡과, 내가 가진 맞장구 스킬은 모두 써버렸다.
이제 한동안은 누구하고도 대화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수패의 화살이 다 떨어진 지금, 누군가가 말을 걸기라도 하면 진심으로 위험할지도 모른다.
특히 상대가 유키노시타일 경우는 언어의 폭력이 물리적 흉기와 같은 수준이니까. 펜은 칼보다 강하다, 유키노시타의 매도발언은 더욱 강하다. 법률로 규제해라, 규제.
 
 
 
 
하루노"헤에, 깨끗해졌잖아. 나쁘지 않은데?"
 
유이"뭐라고 말하고 커트 했어?"
 
하치만"아니, 딱히…. 적당하게 부탁합니다, 라고 한것 뿐인데"
 
유키노"히키가야, 네 사는 방식이 아니니까, 뭐든지 적당한건 좋지 않은데?"
 
하치만"왜 내가 사는 방식이 적당하다고 단언하냐?"
 
유키노"그럼, 사는 방식이 아닌, 건실한 장래설계라고 생각하는걸까"
 
하치만"당연하지. 우선 일단 지금 나의 학력으로도 들어갈법한 대학을 골라서 진학하잖아?"
 
유키노"…갑자기 의지가 낮구나"
 
하치만"그래서, 재학중에 다정하고 귀여운 여친을 발견한다"
 
유이"따, 딱히…대학교에 가고나서 아니라도…괜찮지 않을…까나?"머뭇머뭇
 
하치만"뭐, 됐으니까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중간에 자르지마. 너 혹시 참새냐?
 
유키노"그래서, 그 여친에게 차이고나서 어떡할 생각이니? 목이라도 맬거니? 꽤 짧고도 슬픈 인생이구나"
 
하치만"어느새 이미 차인게 확정된거냐…"그보다 멋대로 나를 죽이지 마.
 
유키노"그치만 계획에는 리얼리티가 있는 편이 좋잖니?"
 
하치만"리얼리티가 있는 만큼, 꿈이 없거든"리얼이면 죽이지 마.
 
내 인생은 꿈조차 꿀 수 없는거냐? 뭐, 너랑 있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악몽이지만. 드림 캐쳐같은거 필요 없을 정도로. 다스 단위로.
 
 
 
 
하치만"아ー…그래서, 졸업하면 그 여친하고 결혼하고, 나는 전업주부가 되고 부인님이 일해서 평행 키워주는거다. 어때, 더 이상 없을 만큼 퍼펙트한 인생계획이잖아?"
 
유키노"…어때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눈을 썩게 하면서 기쁘게 장래 꿈을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유키노시타가 상당한 기세로 식겁하고 있다.
 
유이"역시 썩은건 눈 뿐만이 아니었어…"유이가하마가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역시가 뭔데, 역시라니.
 
유키노"유이가하마, 이 남자의 경우엔 썩은 근성에 눈에 나타난거야. 그러니까 그 표현은 꼭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어. 지렁이도 땅강아지도, 더군다나 좀비나 히키가야도 일단 그런대로 열심히 살고 있잖니? 차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아니, 언제나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건 오히려 너잖아. 그보다 아무리 그래도 좀비는 살아있지 않잖아.
 
 
 
하치만"하아? 너희들 무슨 소리하는거야? 누구든 직업선택 자유가 인정되고 있잖아? 게다가 요즘 남녀공동 삼화 풍조에 빠져있으니까 전업지부도, 지금 딱 그래도 트렌디한 직종이잖아"
 
유키노"지당하다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요컨대 '일하면 패배'라고 하는 니트와 같은 수준의 이론이구나. 이런 남자한테 속으면 안 돼, 유이가하마"
 
하치만"나를 나쁜 남자의 견본처럼 말하지 마"
 
유키노"어머, 견본이 아니라 딱 그대로 나쁜남자 그대로잖니? 포르말린에 절인채로 '썩은 눈. 바과. 저속. 나쁜 남자(개체명 : 히키가야 하치만)' 라고 쓴 꼬리표를 달고 학술표본으로서 있어야 할 장소에 전시해도 좋을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하치만"바보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너. 나는 남에게 악영향도 좋은 영향도 주지 않아. 클린하고 에코한 인축무해한 무인 외톨이다!"
 
유키노"독으로도 약으로도 쓸 수 없는 남자라는게, 어떤 의미로 가장 최악이구나…"
 
그러니까 내 존재 가치를 딱 잘라버리는 소리 마라. 이 녀석 혹시 밤이면 밤마다 지나가던 사람 베어다니는거 아냐?
 
 
 
하루노"과연. 하지만 그 계획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결점이 있는것 같아"
 
거기까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루노 씨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어왔다. 그보다 언제부터 '대화'가 일방적인 매도를 의미하게 된거야.
 
하치만"엑? 그, 그렇슴까?"그건 흘려들을 수 없다. 나의 이 완전무비한 인생계획에 결점이 있다…라고?
 
유키노"하나 뿐…일까?"유키노시타가 다른 의미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루노"그럼 질문이에요. 히키가야는 어떻게, 그 귀엽고 다정하고 장래성있는 여자애를 설득해서 함락시킬 생각이었을까요?"
 
…………아뿔싸. 맹점이었다.
 
 
 
하치만"…윽, 그, 그건…엎드려 빈다…던가?"
 
유이"난데없이 엎드려 빌기 당하면 여자 쪽이라도 깰거야…"그렇게 말하면서 유이가하마는 이미 식겁하고 있었다. 인간은 빠지는 때가 중요하지? 의미는 다르지만.
 
유키노"…아무래도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것 같구나…여전히 대책없다고 할까 무모하다고 할까 무능하다고 할까…아무튼 죽어주지 않겠니?"유키노시타가 진심으로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본다. 그러니까[삐ーーー]하지마. 생명은 귀중하다고? 특히 내 생명이라던가.
 
하치만"그, 그런 세세한것 까지 신경쓰지 못했던것 뿐이라고"책사, 책략에 빠진다는걸 이걸 가리키나?
 
유이"…그거 전혀 세세하지 않다고 생각해"
 
유키노"요컨대 네가 말하는 그 완벽한 계획이라는건 기본설계 단계에서 이미 파탄나 있다는 소리야. 정말, 차라리 몽땅 포기하고 좀 더 견실한 방법을 모색하렴. 그러면 어쩌면…"
 
 
 
하루노"…그러니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가 아니라, 이참에 여친 후보를 찾아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하루노 씨가 유키노시타의 고설을 가로막듯이, 뜻밖의 발언을 한다.
 
하치만"어?"너무나도 뜻밖이라,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혹시 내 머리가 나쁜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 부근은 화려하게 패스.
 
유이"마,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어째선지 유이가하마가 물고늘어지듯 찬성한다. 혹시 배가 고픈걸지도 모른다. 물고늘어지는 점을 보건데.
 
하치만"어? 그치만 다정하고 귀여운데다 장래성있는 여자가, 그야말로 어떤 의미로 전멸위기종 같은거 아닌가요?"
 
스스로 말해놓고도 뭐하지만 어디에 있냐고, 그런게. 말 그대로 레드 데이터 걸. 전자기구가 부서질지도 모른다.
아마 시대가 시대라면 같은 무게의 금과 교환될 정도로 귀중하다. 절벽의 꽃은 물론, 기아나 고지에만 피는 환상의 난초같은 희소종.
 
유키노"게다가 너처럼 썩은 눈을 가진 인간 쓰레기에게 호의를 가져주는 여자로 말하면, 그야말로 도시전설같은 거구나"
 
하치만"뭐, 확실히 적어도 지금 현재로선 내 주위에는 없겠지…"
 
유이"그, 그렇지도 아닌게 아닐까"///중얼중얼
 
하루노"어쩌면 뜻밖에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치, 유키노"하루노 씨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유키노"그, 글세. 그건 어떨까"///
 
아니, 딱히 내 여친은 하얀 메리 씨라던가, 메리 씨의 양이라던가, 전장의 메리 크리스마스 같은게 아니라도 되니까.
'여보세요, 나 메리 씨. 지금 당신의 뒤에 있어…'라고 내 스마트폰에 전화 걸어오면 어쩐다고. 무서워서 밤에 혼자서 화장실에 못 가게 되잖아.
 
 
 
미용실이 끝나서, 다음은 마침내 오늘 메인 테마가 되는 옷 선정이다.
 
스○라스브○고, 타○・유아・○이, 아○아스 큐○이나, 대체 그거 어디의 나라 격투기 같은 브랜드의 가게 이름을 들었지만, 당연하게도 딱히 오는게 없다.
그저 끌려온 가게 안에서 힐끔 가격표를 본것 뿐이지만, 평생 내가 자력으로 사는것도 입을 일도 없을거라는것 만큼은 잘 알았다.
 
셔츠 1장으로 나의 용돈 3개월치는 틀림없이 날아간다. 어쩌면 반년치일지도 모른다. 뭐야 그거 약혼 반지 같은거냐.
이런 비싼 옷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외출을 할 수 있을리 없잖아. 옷 입은채로 유괴당하면 어쩔건데. 이거 혹시 도코노마에 걸어둬야 하는거야?
 
유이"아ー…, 너무 화려한건 힛키한테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유키노"유이가하마, 화려한 옷이 안 어울리는게 아니야. 이 남자에게 어울리는 옷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거야"
 
유키노시타가 유이가하마에게 엄마가 딸에게 간절이 달래듯이 말한다.
 
유이"그럴려나-. 아, 보더 무늬같은건 어울리지 않아?"
 
유키노"그건 그의 마음이 사악하니까 그런거니"
 
하치만"그게 아니잖아"
 
유키노"하지만 확실히 죄수복도 가로줄무늬구나"
 
하치만"그거 어느 시대 이야기야?"
 
유키노"이 참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죄수복"
 
하치만"그러니까 왜 내가 형무소에 수감되서 복역하는걸 전제로 이야기를 진행하는거야"
 
 
 
결국은 옷 코디네이트는 모두 하루노 씨에게 맡기기로 했다.
 
스폰서니까 어쩔 수 없지. 아니, 딱히 내 의견이 하나하나 각하되서 그런게 아니거든. 처음부터 들어주지 않은것 뿐이고.
 
유이"그러고보니 힛키는 평소 어떻게 옷 고르는거야?"
 
하치만"아니, 엄마가 사온걸 적당하게 입는것 뿐인데?"아마 유니실로나, 인근의 바겐세일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엔 적당하게 돈을 받고 코마치랑 같이 사러간다. 코마치가 여러모로 어드바이스를 해줘서, 옷을 고르는건 언제나 남에게 맡기고 있다.
 
 
 
"오, 코마치, 이거 좋다고 생각 안해?"
 
"으-음, 그럴까나-. 그치만 오빠한테는 이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그, 그래?"
 
"응, 완전 좋아! 멋져! 인기많겠다! 응, 이걸로 하자, 이거"
 
"그런가, 응. 그렇구나. 좋아 알았다. 이거 주세요"
 
"아, 그치만 그렇게 하면 돈이 좀 남아버리네-. 그렇지! 파르페라도 먹으러 갈까? 물론 오빠가 사는걸로!"
 
 
 
 
하치만"…같은 느낌이다. 어때, 귀엽고 똑부러진 동생이지? 부럽냐?"
 
유이"…힛키, 그거 완전히 코마치한테 속고 있어"
 
 
 
마치 옷갈아입히기 인형처럼 번갈아 옷을 갈아입고 있었지만, 하루노 씨는 그다지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유키노"오히려 안을 바꾸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하치만"그래선 의미 없잖아"
 
유키노"그럼, 하다못해 얼굴만이라도 깨끗한걸로 바꾸면?"
 
하치만"아니, 나는 호○맨 아니거든"
 
유키노"그렇구나…아무리 봐도 히키가야 균은 세○맨이라는 느낌인걸"
 
하치만"아무렇지 않게 히키가야 균이라고 하지 마"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잖아.
 
큭…나의 봉인된 기억이…아니, 중2병 같잖아, 그거.
 
하루노"얼굴도 귀엽고, 어떤 옷도 결코 안 어울리는건 아닌데, 어째서 전체적으로는 이렇게 수상쩍은 인물로 보이는걸까…?"
 
유키노"확실히, 옷차림이 단정한만큼 도리어 수상쩍은 느낌이 나네"
 
유이"…왠지 결혼 사기꾼같아"
 
중얼거린 유이가하마의 말에 유키노시타가 미묘한 얼굴을 한다. 그보다 너희들 옷 고르기 전에 먼저 단어 선택을 하는게 어때?
 
유키노"분명 그 썩은 물고기 같은 눈이 모든걸 엉망으로 하는거야"
 
유이"그럼 계속 눈을 감고 있는다거나?"
 
하치만"못 걷잖아"
 
유키노"차라리 눈을 부순다거나?"
 
하치만"왜 그렇게 되는건데"
 
하루노"차라리 눈알 채로 파내는 김에 코랑 귀도 떼어버린다거나?"
 
하치만"…좀 더 온경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겁니까"움찔
 
그거,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 형벌이야. 너희 자매는 세계 형벌 대사전 같은거야 뭐야?
 
 
 
 
하치만"선글라스? 내가?"
 
유이"응, 어때?"
 
유이가하마가 또 엉뚱한 소리를 했다. 너무 엉뚱해서 날아가버릴 느낌이다. 스포츠 만능한 녹색의 공령이라던가, 머리에 프로펠러를 단 갈색머리 설남이 나올것 같구만, 그거.
 
하치만"아니, 나. 선글라스는 커녕 안경조차 낀 적이 없는데…"
 
유키노"신기하네. 그 만큼 썩은 물고기 같은 눈이라면 적어도 시력에도 나쁜 영향이 있을것 같은데"
 
하치만"그러냐? 오히려 DHA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머리 좋아질것 같은데?"
 
유키노"…네 그 자신의 결점을 긍정하는 점, 도리어 존경해야하지 않을까 마저 생각이 들어"
 
하치만"그럼 좀 더 그런대로 경의를 표해라…"
 
하루노"아, 마침 나 갖고 있어. 남녀겸용 디자이너스 선글라스니까. 딱히 이상하지는 않지"
 
나는 하는 수 없이 하루노 씨가 건낸 멋진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받아들고 살짝 껴본다.
 
생각보다 가볍고, 시력도 그리 어둡지는 않다. 이거라면 자신의 카피를 하나 늘리거나, 불법입국 우주인도 여유롭게 붙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이"…헤?"///
 
유키노"…에?"///
 
하루노"…어머?"///
 
상정밖의 반응에 당황한다. 설마 거꾸로 꼈나?
 
하치만"…뭐야? 그렇게나 안 어울려?"
 
어쩌면 모르는 사이에 울트라 세븐으로 변신한건 아니겠지. 아니, 어느 쪽이냐고 하면 나 울트라 하치만인데. 직역하자면 초하치만. 왠지 외톨이 냄새가 엄청 나는데 그거.
 
 
 
하루노"의, 의외로 어울리는구나…"하루노 씨가 당혹해하며 중얼거리고,
 
유이"조, 조금 멋질…지도"유이가하마가 왠지 모르게 감탄하고,
 
유키노"모처럼 웃을 준비까지 하고 기다렸는데…"유키노시타가 실망의 한숨을 쉰다.
 
아니, 딱히 웃기라고 한것도 아니고. 혹시 쿠마다마○시 같은 무언가를 기대한거야? 아니, 나한테 그런 드립은 없거든.
오늘은 그런 취지의 모임이었나? 역시 나 집에 가도 돼?
 
삼인삼색의 표현이지만, 딱히 비꼬아진건 아닌 모양이다. 아무래도 다른 의미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건 내가 감지할 점이 아니다.
 
말하던 유이가하마가 가장 놀라는 점에서 보건데, 왠지 못 먹는 감 찔러나보자 식으로 해봤던 의견을 말해봤더니 왠지 모르게 채용된것 같은 분위기다.
이렇게 또 쓸데없는 짓을 한다니까, 사축이라는 녀석은…. 단순히 어쩌다 생각나서 말한거니까 내일 아침에 기획서 같은거 제대로 정리될리 없잖아. 게다가 프레젠테이션까지 해라던가? …아니, 그러니까 그거 대체 어디의 누구 이야기인데.
 
 
 
하치만"이제 됐지? 왠지 피곤해졌고. 슬슬 포기하고 집에 안 갈래?"
 
역시 익숙치 않은 복장을 입는게 힘들어져셔, 넥타이를 풀고 그러는 김에 머리카락에 손을 찔러 조심스레 세팅된 머리카락을 조금 무너뜨린다.
 
유이"…아, 그거 좋을지도!"
 
하치만"어? …집에 가도 돼? 그럼 수고!"
 
유이"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집에 가려고 하지 마!"
 
하치만"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자연회귀는 인간의 원점이잖아"
 
유키노"오히려 너는 흙으로 돌아갸아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치만"대수롭지 않게 무서운 소리 하지마"
 
 
 
 
하루노"응, 그치만 그 비뚤어진 느낌이 왠지 조금 나빠 보여서 좋을지도 몰라"
 
유키노"그렇구나, 히키가야의 경우, 비뚤어지거나 초라하거나, 침울해하는거 특기인걸"
 
하치만"시끄러워"그러는김에 말하자면 뒤떨어지는것도 완전 특기다. 현재진행형으로.
 
유이"아, 그치만 봐, 손자한테도 옷이 날개라고 하잖아?!"
 
하치만"너 그거 혹시 칭찬할 생각으로 말한거냐?"
 
유키노"유이가하마, 그 속담의 손자는 자자손손의 손자가 아니라, 망아지 라는 의미인데? 뭐, 어디의 색골마인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가히 훌륭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치만"말이 들어가는 만큼 잘 우려먹겠다는 생각이냐?!"
 
하루노"30점"
 
여전히 점수 주는건 짜구만, 이 사람.
 
 
 
 
하지만 조금 건방진 말이라는건 대체 뭐야? 흑왕호나 카츠카제같은걸 말하나? 나, 세기말 패자도 장수도 아닌데?
 
하치만"그보다 너, 조금 더 좋은 말이 있잖아?"
 
유키노"미안해. 말이 부족한 모양이구나. 그 복장은 정말로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네 비소하고 소악당 스러운 모습하고 말이야"
 
하치만"…아니, 잘 알았다. 너도 나를 칭찬할 생각이 일절 없다는것 만큼은 말이다…"
 
 
 
하루노"좋아, 일단 이걸로 룩스를 맞추면 클리어구나. 남은건 작법이나 매너인데…"
 
하치만"켁, 아직도 있는겁니까"
 
하루노"당연하지. 그래도 내 남친이니까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수준이 되어주지 않으면 안 돼"
 
경험치 벌지 않았으니까, 장비만이라도 충실하게 해도 레벨업은 무리잖았슴까.
 
그보다 너무 남친 강조하지 말아주겠습니까? 왠지 유키노시타랑 유이가하마가 나를 보는 시선이 서서히 차가워지고 있으니까.
아- 가을도 가까워졌지-. 내 주위만 한발 먼저 겨울이지만. 이대로라면 나한테 봄같은건 당분간 올것 같지 않다.
 
 
 
그때 마침,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는 경쾌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하루노 씨의 스마트폰에 착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핸드백에서 꺼내들고 화면을 확인하니, 형태좋은 눈썹이 찌푸려진다.
 
하루노"잠깐 미안해…네, 여보세요?"
 
하루노 씨는 조금 장소를 이동하며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조금 뜸을 두고 나서,
 
하루노"유키노, 미안해. 먼저 계산해주겠니?"라며 황급하게 유키노에게 말을 한다.
 
유키노"알았어"유키노시타는 그렇게 대답하고 점원을 찾으러 카운터로 향했다.
 

 
 
남겨진 나와 유이가하마는 갑자기 무료해져서 둘이서 나란히 선채로 하루노 씨랑 유키노시타가 돌아오는걸 기다리게 됐다.
 
대수롭지 않게 넓은 가게를 돌아보는 사이에, 정면에 놓여진 전신거울 너머로 유이가하마와 눈이 마주친다.
 
하치만"…뭐, 뭔데"///
 
유이"…따, 딱히"///
 
어째선지 거북한 분위기가 흐른다. 아니, 딱히 이상한 짓은 무엇 하나 하지 않았는데?
 
옅게 화장하여 평소보다 조금 더 어른스러워 보이는 유이가하마의 볼에, 살며시 복숭아색으로 물들어서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눈을 내려뜬채로 손에 든 지갑을 들고 머뭇거리는 모습이 왠지 좀스럽다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애시당초 내가 유이가하마와 단 둘이 된 정도로…아니 그러니까 올려다보기로 나를 힐끔 쳐다보지 마.
네가 그렇게 과잉 의식하니까 상승효과로 내가 거북해지잖아.
 
이제 이 지구상에 내가 있어도 좋을 장소는 남아있지 않는걸지도 모른다. 아니, 암만 그래도 그건 지나치게 비관적이잖아.
 
 
 
 
하치만"…커흠. 아ー…, 유이가하마…"나는 현재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나온다. 벌써 마지막이냐. 달리 방법은 없어?
 
유이"에? 뭐, 뭘…까나?"///
 
하치만"이렇게 단 둘이 되버렸는데 말이야"
 
유이"으, 응"두근두근"
 
하치만"나 이제 집에 가도 되냐?"
 
유이"그렇구나…앗, 좋을리 없잖아!"
 
하치만"칫"
 
유이"왜 늘 그렇게 바로 집에 가려는 거야…"
 
하치만"뭐, 이른바 동물의 귀소본능이라는 거지"
 
덧붙여 나의 귀소본능은 철새급. 예를 들어 어디에 있어도 집 방향 만큼은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이"…천성적인 힛키구나"
 
하치만"멋지게 내츄럴 본 힛키라고 불러줘도 좋다"
 
유이"의미 똑같구, 전혀 멋지지 않아…"
 
 
 
유이"아, 힛키. 넥타이 비뚤어졌는데?"
 
유이가하마가 나의 표정을 무시하고 복장 흐트러진것을 지적한다. 너 언제 선도위원이 된거야?
 
하치만"아까 풀었으니까 그런거잖아?"나는 딱히 신경쓰지 않지만, 막상 다시 하려고 생각해도 평소 그다지 넥타이를 한 적이 없는 만큼 요령을 모르겠다.
 
넥타이는 사축의 상징 같은거고, 가능하면 평생하고 싶지 않다. 목에 줄같은걸 감고 자[삐ーーー]하는 사형시킬때 말고 없잖아. 아니, 어느쪽이냐고 하면 그게 흥행하면 난처하지만.
 
덧붙여 우리 학교는 비교적 교칙이 풀어져서, 공식 행사에 참가할때 말고는 특별히 넥타이 착용이 의무된건 아니다.
자이모쿠자처럼 일부 학생은 상시 넥타이를 하고 있지만 나는 기본 노 넥타이고, 하야마는 멋쟁이형 끈 타이를 착용하고 있다.
토츠카에 이르러선 늘 체육복 차림이다…그거 괜찮은거냐? 하지만 귀여우니까 용서한다, 내가.
그러고보니 토츠카의 교복차림은 본 적이 없는것 같은데, 굉장히 잘 어울릴것 같은데…특히 스커트 같은거.
 
 
 
 
유이"정말, 자. 이리 줘봐"
 
내가 버벅거리는걸 보다못했는지 유이가하마가 정면으로 돌아서 넥타이 끈을 다시 매준다.
서로 얼굴 위치가 상당히 가까운것도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이 녀석은 때때로 약삭빠를 만큼 여자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무의식중에 굉장히 무방비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나로서도 어느쪽이 진면목인지 판단에 곤란한 일이 있다.
포근한 플로럴 계의 향수 냄새가 비공을 간지른다. 이 시츄에이션은 왠지…신혼부부 같지…않나?
 
하치만"너, 왜 넥타이 매는법 알고 있어?"잠자코 있는것도 부끄러워서 부끄럼 감추기로 말한다.
 
유이"응-? 가끔 아빠 넥타이 같은거 고쳐준 적도 있구-…"
 
 
 
 
"잘 어울리네요"
 
하치만&유이"에?"///
 
갑자기 누가 말을 걸어서 당혹한다. 어느샌가 초로의 점원이 옆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유키노시타와 엇갈린 모양이다.
 
유이"에? 히얏? 그, 그런거 아니에요!"///
 
점원"그런가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요?"생긋거리며 미소를 짓는다.
 
유이"에 그게…그런…거…려나?"///유이가하마가 힐끔 올려다보며 나를 본다.
 
잠깐만, 유이가하마. 너 뭘 착각하는거냐. 아니잖아. 그게 아니라…
 
 
 
 
점원"네, 사이즈도 딱인 모양이고, 색도 손님하고 잘 어울리십니다"
 
유이"에? 아, 그, 그쪽? 그렇지요-. 아, 아하하…"///
 
거봐라, 이상한 생각하지 말라고. 내 반응이 난처해지잖…
 
점원"두분 다 젊으신 모양인데요, 혹시 부부신가요?"
 
하치만&유이"무슨?!"///
 
유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아니에요. 그그그그그그그럴 수가, 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라고 들으면…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는…고고고고고고곤란해요"/// 
 
그렇지요-. 나도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난처하니까-. 그보다 슬슬, 넥타이에서 손을 떼라. 목 졸려서 괴롭다고.
 
 
 
 
"어머, 유이가하마. 그 남자를 교[삐ーーー]거면,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도 도와줄건데?"
 
흉흉한 소리를 하면서 유키노시타가 돌아왔다.
 
유이"아, 아, 아, 유키농? 괘, 괜찮아! 혼자서도 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더욱 세게 내 넥타이를 조른다. 항복항복. 항복이라고. 아니, 진짜로. 슬슬 경동맥이 조여오니까. 진짜로 위험해.
 
유키노"어, 어머, 그러니…"그 유키노시타가 왠일로 식겁하고 있다.
 
유이"헤?"겨우 유이가하마가 정신을 차리고 내 넥타이에서 손을 뗐다.
 
하치만"쿨럭…너,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지…"
 
솔직히, 조금이지만 꽃밭이 보였다. 그 건너편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손을 흔드는것도.
 
 
 
유키노"언니, 늦네…"
 
하치만"그러고보니 그렇구만. 혹시 먼저 집에 갔나?"
 
유이"설마, 힛키도 아니구…"
 
하치만"아니, 나는 지금부터 집에갈 참인데?"
 
유이"그러니까 틈보고 바로 집에 가려고 하지 마!"
 
유키노"내가 잠깐 찾아보고 올게"
 
하치만"…혼자서 괜찮냐? 길 잃는거 아냐?"
 
유키노"너, 나를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거니?"
 
하치만"미아 예비군이잖아?"
 
 
 
 
이 녀석의 방향치가 유전이라고 하면, 어쩌면 언니농도 상당히 위험한걸지도 모른다. 아마, 지금쯤 알래스카 쯤일 것이다.
여기서 유키노시타를 탐색하러 보내면 2차 조난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유키노"실례로구나. 괜찮아. 평소부터 제대로 지도와 나침반을 갖고 다니니까"
 
하치만"대도시(내 입장으로) 한 가운데서 평범하게 오리엔테이링 하지마"
 
아니 오히려 이 녀석의 경우엔 생사를 건 서바이벌인걸지도 모른다. 유키노시타라면 우선 틀림없이 주택지 같은데서도 평범하게 조난할것 같으니까. 구조반 여러분도 바쁘니까 너무 번거롭게는 하지 마라. 일단, 3일치 비상식량 같은거 갖고 다니는 편이 좋지 않냐?
 
 
 
 
하치만"자, 그럼 나도 잠깐…"유키노시타가 모습을 감췄을때 유이가하마에게 말을 건다.
 
유이"에? 힛키 어디가? 나도 갈래!"
 
하치만"…아니, 화장실인데? 너도 같이 올거냐?"
 
여자랑 같이 소변을 보는건 역시 좀 그림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지. 이게 만약 토츠카였다면…역시 문제 있을것 같은데.
이젠 차라리 성별은 남성.여성.토츠카로 나눠도 되지 않아? 얼른 법률 개정해라고. 내가 토츠카랑 결혼할 수 있도록.
 
유이"앗, 아니, 그런건 먼저 말해! 힛키 바보!"///
 
하치만"왜 화장실 가는것 정도로 일일이 바보 소리를 들어야 하는건데…"
 
너, 바보라고 하는 쪽이 바보라고 학교에서 안 배웠냐? 정말로 바보구만.
 
 
 
 
화장실에서 일을 마치고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원래 장소로 돌아가려고 하니, 어디선가 하루노 씨랑 유키노시타의 낮은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미아가 되지 않고 무사히 자매의 재회를 해낸 모양이군.
어쩌면 여자도 같이 소변을 보는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실이니까 대화같은거 굉장히 하기 힘들것 같다. 벽을 쳐서 모스 신호 보내는건가?
 
나는 둘의 모습을 찾아 주위를 돌아본다. 바로 인근에 있을텐데, 목소리는 나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따라 걸어가려고 하니, 갑자기 둘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하루노"…그럼 유키노한테 있어 히키가야는 뭐니"
 
무심코 다리가 멈춘다. 무슨 대화를 하는거야, 이 녀석들.
 
 
 
유키노"그하고는 같은 부활동의 부장과 찌질이 부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그 이외 무엇도 아니야"
 
어이어이, 찌질이는 필요없잖아. 확실히 그 말대로긴 하지만.
 
하루노"흐-응. 그럼 만약 내가 정말로 히키가야랑 사귀게 되어도 딱히 상관없지? 유키노한테 있어 히키가야는 단순한 찌질이니까."
 
아니, 그러니까 찌질이가 아니라 부원이라고. 그보다 누구랑 누가 사귄다고?
 
유키노"…읏! 그건…"말이 막힌다.
 
이거 참. 무슨 얘기를 하는거야.
평소 유키노시타라면 "어머, 언니. 꽤나 취미가 나쁘구나. 저런 눈이 썩은 사람이라도 괜찮다면 어딜 데려가줘도 상관없어. 애시당초 데리고 걷는것 만으로 언니의 평판이 바닥을 치게 될건 불을 보듯 뻔하겠지만"정도는 할텐데…뭐야 그거, 내가 생각해도 너무 슬프지 않아?
 
아무튼, 너는 결단코 도박 같은건 하지마라. 분명히 흥분해서 몸을 망친다. 아니, 패배한 화풀이로 도리어 세계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 그냥 평생 자라. 루루이에 같은걸로.
 
 
 
 
유키노"서, 설령 언니라고 해도, 유키노시타 집안 이름에 흙을 칠하는 짓은 허락할 수 없어"
 
집안 이름까지 더럽히는거냐…나는 얼마나 오염물질인거야? 세간에서 제염되어버릴 수준? 비제하기 위해 제오라이트나 벤트나이트가 필요해?
 
하루노"슬슬 솔직하게 인정하는게 어떠니? 유키노. 너는 히키가야를…"
 
유키노"아니야"
 
유키노시타가 한층 큰 목소리로 언니의 목소리를 가로막는다. 그 울림은 마치 자기자신에게 들려듯 들렸다.
 
하루노"이거 참, 정말로 둘 다 완고하다니까. 그런 점은 많이 잚았구나"
 
어? 둘 다라는건 나도 포함되는거? 어느 틈에 투 맨셀이야?
 
하루노"…아니면 서로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척을 하고 있는건, 혹시 그 아이 때문이니?"
 
 
 
 
그 때 내 머리에 떠오른건, 지금 여기에 없는 한 명의 여자애였다. 끊임없이 주위의 분위기를 읽고, 그마저도 깊게 내딛을 수 없는, 다정하고 기운차고 그러면서도 겁이 많은 구석도 있는 여자애. 그녀는 지금 이때마저도, 줄곧 기다리고있을 것이다. 유키노시타를.
 
유키노"유, 유이가하마는 관계없어"
 
하루노"어머, 나는 유이가하마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유키노"…윽!"
 
이거 참. 외톨이가 익숙치 않은 친구를 가지면, 역시 그것 만으로도 약점이 되는구만. 그 점에서 나한테는 약점도 사각도 없다. 무슨 소릴 한들 친구가 없으니까.
 
 
 
 
유키노"어, 언니하고는 관계없잖아?"
 
하루노"어머, 관계 없지는 않아. 유키노는 나한테 있어 단 한 명 뿐인 귀여운 동생이니까"
 
응응, 그 마음은 잘 알지. 나도 코마치를 엄청 사랑하고. 그 한점에 있어선 의외로 마음을 맞을지도 모른다. 동생을 향한 사랑의 방향이 너무 다르지만.
 
하루노"…거기다, 솔직히 히키가야한테도 흥미가 있어. 물론 한 명의 남성으로서"
 
거봐 왔다. 하지만 그런 훤히 보이는 수에 낚인다면, 지금쯤 산더미 같은 그림과 술병과 빚을 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라고 해도 내게는 위대한 스승, 선구자들이 있다. 빌어먹을 아버지라는 이름의 반면교사가.
 
 
 
 
뭐, 실제로 나로서도 결코 연상 여성을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무심코 히라츠카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르지만, 물론 공손하게 패스.
하지만 하루노 씨는 신용할 수 없고, 확실하게 말해서 거북하다. 이번 일도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 말도 결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뒷면이 없는 수표는 빈말이나 똑같아서 전혀 신용할 수 없으니까.
 
 
 
하루노"히키가야도, 이래저래 말하면서 유키노를 위해 진흙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 조만간 분명 웃는걸로 끝나지 않게 될건데?"
 
유키노"그, 그건…"
 
하루노"지금도 말로 하지는 않지만, 꽤나 심한 대우를 받고 있는 모양이야. 여러모로 하야토랑 시즈카짱한테 들었어"
 
유키노"에?"
 
아마 사가미 신파극에 의한 공작활동을 말하는거겠지. 확실히 다소 번거롭지만, 그리 대단한건 아니다.
 
나의 흑역사랑 트라우마 파내기는 늘 있는 일이고, 그것도 기껏해야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잠시 일 뿐이지, 영원히 그런것도 아니다.
긴 인생으로 보면 아주 짧은 시기다. 참고 견뎌낸다. 봄을 기다리는 복수초의 경지이다. 잡초의 끈질김을 얕보지 마.
뭐, 나한테 봄이 올지 아닌지는 정해진건 아니지만………오, 오겠지?
 
그보다, 그보다도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토베의 재미반품 언동이 훨씬 짜증난다. 완전 짱난다. 하지만 그거 굉장히 단순하게 '짜증나는 지수'로 말하자면 자이모쿠자가 단연 톱이고.
 
 
 
하루노"본래, 그의 포지션과 스탠스는 '외톨이. 주위 신경쓰지 않는다'일테지? 그런 그가, 너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건, 언니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보다, 내가 심한 처우를 당한건 근원을 따지자면 당신 탓이죠? 게다가 웃으면서 보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루노"그리고, 이건 잘 기억하렴. 아무리 졸렬한 정의를 휘둘러도, 히키가야의 호의에 일방적으로 어리광부리는 동안은, 너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는 될 수 없어"
 
그건 언니를 동경하는 유키노시타에게 너무나도 일방적이고 단정적이며, 게다가 결정적인 선고였다.
 
 
 
 
나는 발소리를 죽여 우회하고, 그 자리를 떠나 유이가하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유이"아, 힛키! 늦어-! 증말, 뭐 하고 있었어?!"붕붕
 
하치만"아아, 미안. 조금…"
 
유이"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내 분위기에서 뭔가 낌새를 눈치챘는지, 유이가하마가 걱정스러운듯 말을 걸어온다.
 
하치만"아니, 딱히. 아무것도 아냐"
 
유이"흐-응. 그럼 딱히 상관없지만…"
 
전혀 좋지 않다는듯 유이가하마가 배려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런 그녀의 눈을 직시하지 못하고 살며시 피해버렸다.
 
유이"…하지만 무슨 일 있으면 혼자서 전부 안지 말고, 나한테도 상담해줘?"
 
하치만"새삼 너한테 들을것 까지도 없이, 나한테 고민이라면 안지 못할 만큼 있거든. 갖고 싶으면 조금 나눠주고 싶을 정도라고?"
 
유이"아하하…뭐야 그거-?"
 
유이가하마가 무리하게 밝게 웃어보인다. 그리고
 
유이"…그치만, 정말로 거짓말은 하지마?"쭈뼛쭈뼛 덧붙였다.
 
하치만"아아, 물론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아"
 
――― 나는 그렇게 말하고, 또 거짓말을 하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