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청춘/놀랍게도 히키가야 하치만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문고판"놀랍게도 히키가야 하치만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부록 샘플

모래마녀 2015. 9. 16. 19:34

문화제가 끝나고 가을이 더 깊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독서의 가을, 예술의 가을.
계절에 있어서 가장 보내기 쉬운 계절이다, 모든 일에 누구나가 의욕적이게 된다.
그건 나와 유키노시타도 예외는 아니라,
"……히키가야의 쿠키는 맛있네"
부실에서 둘이서 식욕의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코마치에게 실컷 맛보기 부탁했거든. 맛없을리가 없지"
"판단기준이 여전해서 기분 나쁜데……"
라고하면서도 템포 좋게 사각사각 먹어가는 유키노시타. 다람쥐 같아서 대단히 귀엽다. 역시 우리의 대천사.
"뭐, 유키노시타의 수제 마들레느는 못 이기겠지만"
"당연해. 연공이 다른걸"
흐흥, 하며 우쭐대는 표정의 유키노시타. 애같아서 대단히 귀엽다. 과연 우리 대천사. 이제 그거구만, 뭘 해도 귀여워서 곤란하다.
"어머, 홍차를 다 마셨네. 한잔 더 필요해?"
"아아, 부탁해"
"알겠습니다, 주인님"
쿡 미소지으며 컵에 빛나는 주홍색이 부어지며 김을 낸다.
지극히 정성을 다한다.
과자와 홍차와 미인과 정도가 있는 얘기 상대.
이 협소한 부실에는 이 세상의 모든 쾌락이 갖추어져 있다.
"…………"
"부끄럽다면 말 안해도된다고 생각해"
"………………"
"아니, 노려봐도 곤란한데……"
대충 문화제에서 메이드 네코노시타 사건을 떠올리며 자폭한거겠지, 새빨개진 얼굴로 원망스럽다는듯이 나를 보는 유키노시타에게 묘한 성벽을 눈뜰것 같다.
기가 센 아이가 부끄러워하는건 참 좋지…….
안 그래도 유키노시타는 빈틈이라고 할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까. 기껏해야 집에 자고 갔을때 너무 무방비한 자는 얼굴을 보는 정도다. 약점이라고 할까, 물리적인 빈틈이구만 이거. 자는 얼굴이라도 할퀼 생각인가. 목덜미가 너무 예뻐서 만지고 싶어진 적은 있지만.
"히키가야"
"아, 네 죄송합니다"
"왜 사과받은건지 전혀 모르겠는데……"
뚱해진 얼굴로 중얼거리듯이 말하고나서 유키노시타는 조심조심 나를 올려다보기로 쳐다봤다.
"그게……또, 보고 싶어?"
"뭘"
"나의 메이드차림"
"……어려운 얘기인걸"
"어머, 그건 너무 신비스러워서 보는것도 꺼려진다는 소리니? 사양하지 마, 히키가야. 여기는 봉삿부,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다정하게"
"아니, 그것도 있기는 있지만……"
"그, 그래……있는거구나……"
메이드 유키노시타에게 거꾸로 섬기고 싶은 느낌은 자주 생각하고 알고 있지만, 문제는 그보다도.
"어차피 가장할거면 다른 것도 보고 싶다고 할까"
"어?"
"미인은 뭘 입어도 어울린다고 하니까. 이참에 코스프레라도 시작하는게 어때, 어라 유키노시타?"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쓰지 말고 계속하렴?"
"아니, 갑자기 등을 돌리고 신경쓰지 말라는건 무리가 있잖아……괜찮아?"
"괜찮아. 좀, 얼굴을 보여줄 수 없는것 뿐이니까……"
뭐야 그거 보고 싶어. 나한테 보여줄 수 없는 수준이라는건 어떤 얼굴이야. 꽤나 심한 제안을 한 나에게 그만 경멸의 눈을 지어버려서 그걸 나에게 보여줄 수 없다며 배려해주는걸까……역시 우리의 대천사 유키노엘. 유키노엘의 엘은 러블리의 L.
"하지만, 그러네……모처럼이니까 다른것도 입어보고 싶네"
"오, 알겠냐 유키노시타. 과연 멋쟁이. 겉멋으로 외출할때마다 복장이 바뀌는게 아니군"
"네가 제대로 알아채주니까 그런거야. 네가 깨닫고 칭찬해주니까 차려입는 보람이 있는거야"
빙그르 이쪽을 돌아보는 유키노시타.
그 표정에는 평소의 부드러운 미소가 있었다.
어쩔 수 없네, 라며 난처한듯한 미소.
뭘 난처한건진 나는 모르겠지만 분명 기쁜 비명같은, 따뜻한 거겠지.
"그래서, 뭘 입히고 싶은거니 에로가야?"
"아니, 딱히 코스프레의 전부가 에로한건 아니잖아"
"히키가야도 남자애인걸"
"얘기를 들어"
딴지 걸면 유키노시타가 즐겁게 미소짓는다.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미소가 거기에 있다.
"바니걸……은 역시 어렵다고 생각하니까, 학교 수영복이라도 입어볼까?"
"아니, 그건 범죄냄새난다……아니 왜 좀 상세한거야, 조사라도 했냐 유키노시타"
"……조금"
뭐 유키노시타도 나치안 여자애니까. 이성에게 인기 있는 복장 하나 둘 조사도 하나.
"별로 성적인건 좀……"
"마음에 안 들어?"
"유키노시타에게는 좀 더 이거, 청초하고 무구한 의상이 더……"
"어울려?"
"그렇다기 보다 평범한 의상말고 그리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줬으면 하는게 있어"
"과연, 그건 일리 있구나"
미인은 뭘 입어도 어울린다고 하지만, 유키노시타처럼 청초 소녀말고는 어울리지 않는 의상이라는것도 있는 것이다.
그럼 그걸 입히지 않을 수는 없겠지.
"청순하고 무구……뭐가 있을까"
"그리스의 여신계열이라던가?"
"안 돼, 신앙이 모여버려서 곤란한걸"
"그건. 그러네. 신자는 나만 있으면 되니까"
"읏…………그, 그러네. 그 말대로라고 생각해"
그 말대로라는것 치고는 좀 버벅였는데……신자는 기분 나빴나.
"여신계열이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옛날에 입었던 교복밖에 없군……"
"너한테 있어서 청순하다는건 꽤나 더럽구나"
"교복에는 이거 뭐랄까……낭만이 있으니까"
그러자,
"…………"
"오오…………"
일부러 일어서서 그 자리에서 빙그르 한 바퀴 돌아버렸다.
둥실 치마가 떠올라 긴 흑발이 춤춘다.
마지막으로 치마 자락을 집어 인사하고나서 소악마처럼 미소짓는다.
"……로망 있어?"
"엄청 로망 있어……그보다 있었다……"
하나의 재보는 여기에 있던거였구나…….
"그래. 그럼 굳이 다른 교복을 입을 필요도 없구나"
"만책이 다했나……유키노시타는 뭐가 생각나? 청순하고 무구한 의상"
"그렇구나, 청순하고 무구……무구……앗"
"오, 송객났나"
유키노시타니까 메르헨틱한거겠지. 판씨 정말 좋아하고 말야. 뭣하면 그냥 판씨라도 좋다. 판씨가 된 유키노시타와 숲 속에서 벌꿀 핥으면서 보내고 싶다.
"새, 생각 나기는 생각났지만……"
뭔가 말하기 힘들어 보이는 유키노시타. 아, 이거 더는 틀림없이 메르헨이네. 신데렐라나 그런게 오는게 아닐까.
"딱히 웃지 않아. 가르쳐줘, 코스프레안"
"이건 그게, 코스프레라기보다 단순한 의상인데……"
"의상?"
아, 드레스나 그런건가? 좋네, 동경해버려.
"히키가야는, 그게……"
유키노시타는 자신 없다는 듯이 시선을 종횡시키며 얼마간 머뭇거리고나서 툭,
"보고, 싶은거니? 나의, 백무"
"봉사부 얘들아-!"
――――――뭔가 말하려고 할때 기세 좋게 부실 문이 열리고 거기에서 낯익은 분이 강림했다.
"의뢰하러 왔어!"
시로메구리 메구리.
우리 학교 2대 천사인 꽤 유명한분의 도래에 나는 성가신 일의 재래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