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부의 난3
 
 
 
 
 
 
 
올려다보면 구름낀 날. 내려다보면 어제 내린 비로 젖은 아스팔트.
 
그 아스팔트를 밟으면서 오늘도 음울한 오러를 뿜는것 처럼 보이는 고등학교의 승강구로 들어간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여기 1년간 안 보는 날이 적었던 긴 흑발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보니 그 녀석은 대충 이 시간대에 등교하고 있었나.
 
이 시간대에 등교해서 그 녀석은 교실에서 뭘 하고 있던걸까.
 
십중팔구, 독서일것이다. 그 이외에는 특별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나와 달리 그 녀석은 인기가 있다. 아마 급우로부터 인사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말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는 나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주말에 그 사건으로부터 5일. ……유키노시타는 뭘 생각하고 있는건지 그건 나는 알 수 없었다.
 
 
  
자, 점심시간이다.
 
어제 자이모쿠자에게 건내받은 라노벨의 첨삭을 하고 있던 탓인지 조금 졸립다.
 
오전 수업을 반쯤 잤던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아직 졸립다.
 
그 영향으로 멍하니 있던 걸까, 매점으로 가던 도중 복도에서 다른 학생과 몸이 접촉해버린다.
 
하지만 그 학생은 서류를 안고 있던 모양이라, 그걸 바닥에 후두둑 떨어뜨리고 만다.
 
"미, 미안"
 
사고이긴 하지만 잘못은 이쪽에 있으므로 주으려고 쭈그려 앉는다.
 
"아뇨아뇨, 괜찮아요~ 제가 나쁘니까요~"
 
…………응? 이 필요 이상으로 아양떠는 목소리는…….
 
"……앗, 뭐야 선배잖아요. 제대로 앞을 보고 걸어주세요"
 
"……야, 아까랑 태도가 180도 다른것 같은데"
 
"그치만 선배잖아요"
 
"연상은 존경하라고 안 배웠냐?"
 
"……글쎄요?"
 
아니, 거기서 고개를 갸웃거리지마.
 
하지만 역시 잇시키. 흥미가 없는 상대가 되면 핑그르 변모하는 그 태도, 더는 말도 없다.
 
"이로하-?"
 
"아-, 먼저 학생회실 가도 돼"
 
아무래도 잇시키는 가까이서 마찬가지로 서류를 안고 있는 여학생과 함께 학생회실로 가고 있던 모양이다.
 
그 여학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인사를 남기고 학생회실 방향으로 걸어갔다.
 
"……저런 녀석 학생회에 있었나?"
 
"……어? 아아, 급우에요. 친구에요"
 
"헤에……너, 동성 친구 있었냐"
 
내가 한 말에 잇시키가 뚱해져서 얼굴을 부풀린다.
 
"……뭐에요? 제가 여자한테 몽땅 미움산다고 생각한거에요?"
 
"아니야?"
 
"………………선배를 짐옮기기 형에 처합니다"
 
"아니, 뭐……잘못한 사죄로 도울 생각이긴 했지만"
 
"과연 선배네요! ……………써먹기 참 좋아"
 
"야, 들린다"
 
서류를 모으고 나와 잇시키는 학생회실로 걸어간다.
 
걷기 시작하니 복도를 오가는 학생, 주로 남자에게서 시선을 느낀다.
 
나에게 향해지는 시선은 모두 수상쩍은듯한, 이상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이다.
 
"……잇시키는 인기 있구나"
 
"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요?"
 
"왠지 남자들한테 이상한 눈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미녀와 야수……아니, 미녀와 악당이라는 느낌이네요?"
 
"……뭐야 그거"
 
"못된짓을 하는 악당이랑 그 악당에게 속아서 아픈꼴을 겪을것 같은, 아파보이는 미녀라는 구도로 보이진 않나요"
 
"미녀라아……"
 
어느쪽이냐고 하면, 이 녀석은 미소녀라고 생각하는데, 말로는 할 수 없다.
 
말로 해버리면 기어오를것 같으니까. 기어올라서 하야마에게 고백하고 차여버린다.
 
"……왜요? 제가 미녀역인게 뭔가 불만이라도?"
 
"불만이라고 하면 악역쪽이군. 네가 더 악역같은데"
 
"……에-? 무슨 소리를 하는건가요-?"
 
"한다고 하면, 소악마랑 외톨이라는 느낌이지"
 
"……그거 원형이 뭔지 모르잖아"
 
"뭐, 나랑 너로는 러브 로맨스는 발생하지 않겠지"
 
나와 잇시키가 그런 관계가 된다고는 상상도 가지 않고, 상상하는것도 오한이 돋는다.
 
잇시키의 상대가 되는건 하야마는 아니더라도 그런대로 잘 생기고 배려 좋고 분위기도 잘 타고 세심한……앗, 왜 나는 잇시키와 사귀는 상대에 대해서 생각하는거야? 이 녀석은 여자애라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뭐, 이 녀석이 이상한 남자에게 낚이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네.
 
예를 들면, 지금 잇시키에게 말을 하고 있는 듯한……그렇게까지 내릴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허리 팬티가 트레이드 마크인, 하반신에 뇌가 붙을법한 얼굴을 한……정리하자면 라노벨에 나오면 예능에서 대머리로 나와서 히로인에게 섬멸될것 같은 외모를 가진 남자. 그런 녀석에게는 걸리지 않을 것이다. ……걸리지 않겠지?
 
"이로하는 말야-, 방과후는 어디 안 가-?"
 
"어-? 무리야-, 학생회 있고"
 
나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 발짝 물러선 곳에서 그 과정을 지켜본다.
 
잇시키의 약삭빠름은 의식하지 않은 상대에게도 발동하는거로군.
 
표정이나 몸짓으로 '함께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어'라는 의사를 보이듯이 나에게는 보인다.
 
옆에서 보고 있는 나에게 그렇게 보일 정도니까 지금 눈 앞에 있는 허리팬티녀석에게도 그렇게 보이겠지.
 
"학생회 같은거 아무래도 좋지 않아? 그보다, 한 명정도는 없어도 어떻게든 되잖아"
 
"어-? 으-음, 어떠려나?"
 
"게다가 말야-, 이로하는 별로 그런 이미지 아니고"
 
"그럴까나-?"
 
"그렇지 않아? 학생회장이라니 얼마나 성실한건데? 라고"
 
과연. 허리 팬티 녀석의 안에서는 잇시키는 불성실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실하지 않은 이미지가 있는건가.
 
"그보다. 그런걸 할 바에야 노는 편이 좋잖아. 노는건 일학년인 지금 뿐이라고 선배들도 말하잖아?"
 
흠, 일리 있다.
 
일리 있지만 그런 문제는 아닌것 같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할까……"
 
오, 잇시키와 내 사고가 링크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잇시키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허리팬티 녀석이 비웃음을 짓는다.
 
"뭐야? 이로하는 지금부터 성실한척이야? 우와, 아니네-. 솔직히 깨네-. 도쿄만도 수위 오를 수준이다"
 
그 발언에는 잇시키를 바보취급하는 듯한, 그녀를 처음부터 내려다보고 있던 듯한 그런 늬앙스가 느껴졌다.
 
뭐, 잇시키가 항상 섣부르게 보이도록 대화를 하고 있다는것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아하, 아하하…… 도쿄만 수위가 올라가는구나- 재미있네-. ……………………………네가 올라가라고"
 
……응? 어라? 이로하스의 상태가? 라고할까, 확실하게 지금 대뜸 폭언을 말했지.
 
허리 팬티 녀석은 자신의 웃음소리로 못 들었던걸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잇시키의 미소가, 도중부터 경직된걸로 보인다.
 
굉장한데, 그렇게까지 하는거냐 잇시키. 어떤 의미로 감탄한다.
 
이 대화를 보고 있어도 끝이 나지 않으므로 제 3자의 개입으로 재빠르게 끝내기로 한다.
 
"……잇시키, 슬슬 안 가면 점심시간이 끝난다"
 
"앗, 그렇네요 선배. …………늦다구요"
 
순간 정색하면서 중얼거리는 잇시키.
 
"그럼 또 봐~"
 
그녀는 허리 팬티에게 손을 흔들고 걸어간다.
 
걸어가길 몇초, 잇시키는 "후-" 한숨을 내쉬고 조금 어깨를 떨군다.
 
"너 말야, 그거 안 피곤해?"
 
"에-? 뭐에요 그거, 걱정해주는거에요-?"
 
"걱정이라고 하락, 뭐어……요약하자면 걱정인걸지도"
 
방금전 같은 녀석의 생태는 나에게는 잘 모르고, 어떠한 행동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연하라고 해도 일대일로 대치한다면 솔직히 말해서 무섭다.
 
눈 앞에서 내숭떠는 후배는 내 말이 의외였는지, 어벙한 표정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진짜인가요, 정말로 그런가요 아니 조금…………에에?"
 
"……역시 지금거 취소. 너 전혀 걱정 안 해. 왠지 잘하는것 같고"
 
"아니, 츤데레는 필요없거든요. 약삭빠르니까. 속성 과다하거든"
 
"……너한테 약삭빠르다고 듣고 싶지도 않아"
 
 
× × ×
 
 
학생회실로 들어가 서류를 책상 위에 둔다.
 
"그러고보니 잇시키의 친구는 어디 갔어?"
 
"어디 간걸까요?"
 
실내를 돌아보니 조금 떨어진 책상 위에 부자연스런 종이 쪼가리가 놓여있다……왠지 의도적으로 놓여있는 분위기를 느끼고 무심코 잡는다.
 
거기에는 아무래도 볼펜으로 쓴 듯한 글씨가 쓰여있었다.
 
『용건이 있으니까 먼저 돌아갈게. 선배랑 단 둘이 있다고 이상한 짓하면 안 된다?』
 
"…………뭐야 이거?"
 
무심코 그렇게 말을 한다. 잇시키에 대한 선언이긴 하지만.
 
"선배? 왜 그래요?"
 
"아니, 이게……"
 
잇시키에게 그 종이 쪼가리를 건낸다.
 
대충 눈을 훑어보고 그녀는 그걸 두쪽으로 찢었다.
 
"……잇시키?"
 
"에? 뭔가요-?"
 
"아니, 그거"
 
"선배, 교실로 돌아갈까요"
 
잇시키는 아무래도 만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만들어낸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오늘, 잇시키와 잠깐 하나만 묻고 싶은게 있었다.
 
"……저기, 잇시키"
 
"……뭐에요? 묘하게 다시 그러고"
 
"그게, 지금부터 하는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줬으면 싶은데…………"
 
"……그러니까 뭐에요?"
 
다시 내 태도에 잇시키는 눈썹을 찡그린다.
 
내 주위에서 샘플이 될것 같은건 이 녀석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너는, 그게……갑자기 남자에게 키스를 받으면…………어떻게 생각해?"
 
――순간 시간이 멈춘 소리가 났다.
 
눈 앞의 잇시키는 그 단정한 용모를 기력이 빠진듯이, 입은 반쯤 벌려져있다.
 
"………………하? 에? 좀, 에엑?"
 
그 입을 움직였다고 생각하니, 잇시키는 곤혹했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리며 내 말을 음미하듯이, 또 입을 다문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요?"
 
"……두 번이나 말하게 하지마"
 
"……아니, 무슨 의도로?"
 
"……그건 그게, 수비의무라고 할가 사적인 문제라고 할까"
 
"…………하아"
 
"잇시키니까 그런 경험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자 잇시키는 한층 미간에 주름을 모은다.
 
그 주름을 펴듯이 그녀는 미간에 중지를 꾹꾹 대면서 한숨을 쉬었다.
 
"……저, 그런 경험 없는데요"
 
"…………진짜로?"
 
"뭐에요? 그 진심으로 의외라는 표정은?"
 
"아니, 실제로 의외였거든"
 
내 태도를 보고선지 잇시키는 더욱 자못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게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치만 말이다?
 
"……그럼 만약의 사정으로도 좋으니까"
 
"하아, 만약인가요"
 
"거, 아까 만난 허리 팬티 녀석이라던가, 어때?"
 
예시로 한 사람을 말해보니 그 샘플이 거슬렸는지 잇시키는 순간 무척이나 싫다는 얼굴을 짓고나서 생각하는 몸짓을 한다.
 
그리고 한 마디.
 
"……작살낼거에요"
 
…………어디를. 아니, 무서우니까 안 묻겠지만.
 
"그보다 선배, 일부러 그러는거에요? 그 예시는 아무리 그래도 무리가 있어요"
 
"그런가……"
 
이 경우,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인 하야마를 예시로 드는건 뭔가 아니지.
 
어느 정도 잇시키와 접점이 있는 녀석은……
 
"……그럼 나?"
 
그 예시의 제공을 받고 잇시키는 순간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나서, 그 표정을 폭발시켰다.
 
"정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요!?"
 
뭐냐니…………내가 한 말을 떠올려본다.
 
……아아, 확실히 이건 아니야.
 
"……미, 미안. 섬세함이 빠졌어"
 
고개를 숙여서 사죄한다. 이러니까 나르가야라고 듣는거지.
 
"……뭐, 상관없지만요"
 
……엄청 쉽다. 라면 수프였다면 여성용을 노리는 듯한, 그런쉬운 느낌.
 
"질문에 대답하면 되는거죠?"
 
잇시키는 팔짱을 끼고 이쪽을 쳐다본다.
 
"……뭐, 그래주면 기뻐"
 
"기쁘다, 기쁘지 않다는 별개로 치고……우선 동요하겠네요"
 
"……동요?"
 
"네, 갑작스러우니까요. 그래서 기쁘다면 받아들인다. 기쁘지 않으면 거절한다고 생각해요. ……뭐, 그 동요의 수준에도 따른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런가"
 
"……선배, 한번 더 묻겠지만 이 질문에 무슨 의미가?"
 
"단순한 앙케이트야"
 
바로 대답을 하니 잇시키는 수상쩍은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 잇시키. 그럼 나는 돌아갈게"
 
"에? 아, 네"
 
나는 학생회실을 뒤로 하고, 빠른 걸음으로 매점으로 향했다.
 
 
 
 
 
 
 
방과후, 봉사부 부실에서 나는 평소 이상으로 지쳐있었다.
 
"힛키, 수고했어-"
 
방금전까지 라노벨 작가 희망 학생(중2/중량급)의 상대를 하고 있던 것이다. 지치지 않는 편이 이상하다.
 
'드르륵'
 
"유키노시타는 있느냐-?"
 
"……히라츠카 선생님, 노크를"
 
"아아, 미안미안. ……유키노시타, 잠깐 학생지도실로 와주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유키노시타는 문고본에 책갈피를 끼우고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간다.
 
"그럼 너희는 부활동에 힘쓰거라"
 
그렇게 말하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문을 조금 거칠게 닫고 복도를 걸어간 모양이다.
 
리놀륨과 실내화가 접촉하는 소리가 멀어져가는걸 느끼면서 조금 틈새가 벌어진 문을 쳐다본다.
 
이것도 선생님이 결혼못하는 이유중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
 
조금 틈새 바람이 들어오는게 신경쓰이지만, 일부러 일어나는것도 귀찮다. 유키노시타가 돌아올때까지 참을까.
 
"……힛키말야"
 
가방에서 책이라도 꺼낼까 생각할대, 유이가하마가 말을 건다.
 
"……왜?"
 
"최근에 무슨 일 있었어?"
 
"……뭔데 갑자기"
 
"…………눈치 못 챌거라 생각했어?"
 
"그러니까 뭘"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나를 쳐다보는 유이가하마의 눈은 진지 그 자체다.
 
"……진심이고 자시고, 뭐가 뭔지"
 
"이번주 들고나서 힛키 어딘가 이상한데?"
 
"……어디가"
 
"……………주말에 무슨 일 있었어?"
 
"……딱히, 유키노시타의 집에서 청소를 도와준것 정도다"
 
"…………엣?"
 
내가 말한 말에 유이가하마는 한방 먹은 표정을 짓는다.
 
유키노시타 녀석, 유이가하마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나? 그러고보니 그러한 소리를 했던것 같은데…….
 
"……뭐야 그거, 나 못들었어"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그건 자고 간거야?"
 
"그럴리가 있나"
 
"그, 그렇지……"
 
유키노시타가 남자를 집에 재운다는건 별로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치만 말야, 유키농의 태도도 좀 이상하단 말이야"
 
"……하?"
 
유키노시타의 태도가 이상해? 뭐, 확실히 나한테 대하는 태도가 조금 부드러워진것 같은 느낌이 안 드는것도 아니지만……그거 이외에는 이렇다할것도……라고 생각했지만, 『나에 대한 태도가 부드러워진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변화다.
 
"가끔 유키농이 멍하니 있는 일이 있어"
 
――그건 몰랐다.
 
"아, 힛키는 모를거라고 생각해. 유키농이 멍하니 있을때는 대개 힛키가 없을때였으니까"
 
"…………"
 
"……그러니까 주말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해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해도, 그런걸 대답할 수 있을리도 없다.
 
며칠이 지난 지금, 그 사건은 환상이었던건 아닌가 생각하는 내가 있다.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건 아니다. 유키노시타가 너무나도, 그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걸로 보였기 때문이다.
 
변했다고 하면, 조금 태도가 부드러워진것 뿐. 그 원인이 그 사건이라고는 한정지을 수 없다. 그저 유키노시타의 기분이 좋은것 뿐일지도 모르고, 단순한 변덕인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가슴이 조금 죄여드는것 같아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 녀석에게 있어서 나는, 그런거렸나.
 
"아, 그리고 말야"
 
뭔가를 떠올린듯이 유이가하마가 다시 말을 한다.
 
"유키농, 최근 들어서 입술을 신경쓰게 됐어"
 
그 말을 이해한 순간, 내 사고는 멈췄다.
 
부실에 있는데, 그 날 유키노시타의 방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역시, 역시 뭔가가 있었구나"
 
유이가하마의 목소리로 나는 제정신을 차린다.
 
"…………힛키, 그 손"
 
그녀의 지적을 받고 나는 자신의 손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한다.
 
"…………아"
 
그 손은 자신의 입술을 대고 있었다.
 
완전히 무의식이었다.
 
나의 그 반사적인 행동을 유이가하마는 진지한 눈동자로 관찰하고 있었다.
 
"……혹시 키스, 한거야?"
 
"………………"
 
"……했구나?"
 
유이가하마는 긴박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도 일어서서 뒷걸음질치듯 유이가하마와 거리를 둔다.
 
"……아니, 유이가하마? 그게, 진정해"
 
"……진정할 수 없어. 진정할 수 있을리가 없어"
 
유이가하마는 만지면 망가져버릴듯한, 무언가가 무너져 흘러넘칠듯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다리를 내딛었다.
 
그런 그녀에게 압도되듯 나는 문하고는 반대방향으로 뒷걸음질 친다.
 
그 후퇴에도 한계는 있다.
 
등이 벽에 부딪친다.
 
유이가하마는 의연하게 슬픈 표정으로 나와 거리를 좁힌다.
 
"……너무해, 유키농……너무해, 힛키"
 
토로함녀서 그녀는 내 가슴팍에 체중을 건다.
 
"……나도, 참았는데…………"
 
턱을 내리니 눈 앞에는 유이가하마의 얼굴. 그 얼굴이 움직여, 지근거리에서 눈이 마주친다.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는다.
 
젖은 눈동자. 달콤한 냄새. 몸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무게.
 
이걸 모두 뿌리치면……
 
뿌리쳐서 어쩌려고?
 
무언가가 변하나? 나는 어떻게 되지? 눈 앞에 있는 이 녀석은? 그리고 그 녀석은?
 
석양이 비치는 찰나, 나는……
 
"…………으읍"
 
발돋음을 한 유이가하마의 그걸 피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입술을 뗀다. ……그 얼굴에는 웃음이, 그녀답지도 않은 시멘트로 굳힌듯한 웃음이 지어져있었다. 그리고 그 시멘트에는 갈라진 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라? 왜? ……기쁠텐데, 어라?"
 
아무리 닦아도 멈추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닦는걸 멈췄다.
 
"……미안, 미안해"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이 부실을 나갔다.
 
그 얼굴에 웃음은 보이지 않았다.
 
미소였던걸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 보이는건 당혹과 슬픔에 희롱당한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 × ×
 
 
 
이미 석양은 저물었다.
 
나는 부실 벽에 기댄 상태다.
 
조명도 켜지 않고 그저 주저앉아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이가하마의 입술 감촉이 떠오를 뿐이라,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의 왜소함을 알 뿐이다.
 
부실을 돌아본다.
 
…………응?
 
유키노시타는 언제가 되야 돌아오는거지?
 
유키노시타의 가방이나 문고본은 그대로 있는데, 그녀는 이 부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어떻게 된거지? 아직도 학생지도실에 있는걸가?
 
아직 완전하교 시간까지 시간이 있기는 있지만…….
 
 
 
× × ×
 
 
 
그날, 유키노시타가 부실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다음날, 유키노시타는 학교를 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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